2026년 10월 16일 (금) · 프놈펜 10.16 프놈펜 $1 = 4,060 리엘 · 1,343 원
편집인 칼럼

[편집인 칼럼]80억분의 1

입력 2026.10.16 13:53뉴스브리핑 캄보디아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오빠는 종종 나에게도 함께 해보자고 권한다. 최근에는 ‘80억분의 1’이라는

게임을 알려줬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몇 번 해보니 생각보다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신통방통한 게임이었다.

시작은 간단하다. ‘태어나기’ 버튼을 누르면 국적, 성별, 가족 구성, 경제적 형편 등이 무작위로 정해진다. 말 그대로 그냥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화면에는 내 인생을 설명하는 짧은 문장들이 이어진다. 가끔 질문에 답하거나 진학, 직업, 삶의 우선순위 등을 선택하면 된다. 1년을 10초 정도로 설정하면 한평생을 살아내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선택할 일이 별로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이 복잡해진다. 취업과 투자, 결혼과 출산, 자녀 교육과 이직까지.

그러다 60대, 70대, 80대가 되면 선택지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아무리 운동해도 건강은 예전 같지 않다. 어느 직장에 갈지, 집을 살지 고민하던 사람이 어느새 요양원에 들어갈 때 집을 팔지 세를 놓을지, 자녀와 손주에게 얼마를 남겨줄지 고민하고 있다. 한때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졌던 선택들이 어느 순간 지나간 일이 된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았다. 나름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198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로 해외 이주를 한 번 경험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는 코트디부아르에서 태어나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해 19년을 살아온 남성이 되기도 하고, 케냐 농부의 딸로 태어나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1년에 백만 원을 벌기 어려운 삶을 살아보기도 한다.

고작 1년이 10초에 불과한 게임이다. 그런데 몇 번의 생을 살아보고 나니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작은 일부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금 내 삶에서 전부처럼 느껴지는 것들도 80억 개의 인생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 사라지거나 달라지더라도 어쩌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칼럼은 뉴스브리핑캄보디아 2026년 10월 19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전화번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