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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집고양이 길고양이
개와 고양이는 성정이 달라서인지 자주 비교 당하곤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의하면, 먹이를 주는 주인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고 한다. 개는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라고 생각하는 반면, 고양이는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에선가, 사람의 성향 또한 <개형>, <고양이형>으로 나눈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가 보답을 하는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보답을 하든 않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거푸 위장을 대접해 주었는데도 요지부동인 경우나, 공으로 얻어먹고 되갚을 기회를 놓치곤 하는 경우, 양쪽 다 편치 않아하는 얄팍한 성정인 나로서는 개 쪽으로 기우는 듯도 싶지만, 순정의 대가를 치른 고독한 팜므파탈의 희고 긴 손가락 애무를 받는 고양이를 상상하자면 그쪽에 더 끌리는 듯도 싶다.
우리 아이들은 고양이형 인간인가 보다. 녀석들의 성화에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고 있다. 내가 인간 이외의 동물을 집안에 들이는 일을 질색하다 보니 현관 밖에서 기른다. 요즘 같은 불가마 날씨에 모피를 두르고도 서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태고 밀림의 왕 흔적이 배어있는 위협적인 걸음걸이로 어슬렁거리지만, 사료가 담긴 플라스틱그릇에 코를 박는 순간 야수의 카리스마는 산산조각 나고 만다. 파푸아뉴기니 식인종이 핫도그를 질겅거리는 꼴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을 설쳤다. 깊은 밤, 어미젖을 찾는 갓난쟁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사랑을 나누는 여인의 교성 같기도 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원초적인 신경 줄을 건드렸다. 잇달아 들려오는 단말마적인 비명소리가 끝내 꿈나라 입성을 망쳐놓았다. 이튿날 보니 한 고양이가 살점이 떨어져나간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경비원의 말에 의하면, 길고양이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캄보디아 고양이는 대부분 길고양이로 날아가던 새도 낚아 챌 정도라, 사료에 길들여진 집고양이는 상대가 안 된다며 걱정스런 표정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악착같이 환경에 적응하는 본능을 타고난다고 한다. 외부 환경이 적대적일수록 세포나 개체는 잠재능력을 무궁무진 개발해 나간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나치집단수용소에 오래 갇혀 지낸 사람들이 일반사람들보다 훨씬 수명이 길었다고 한다. 극한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하게 거듭났던 것이다. 이곳 고양이 사료비가 식구들 쌀값과 맞먹는다는 무식한 아줌마식 계산도 있고 고양이 장래를 위한 거시적인(?) 생각에서 사료를 끊자고 제안했지만, 위생이 어떠니 감염이 어떠니 하며 다 큰 녀석들이 울상이다.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자신보다 훨씬 커다랗도록 “아서라” “말아라” 애면글면 자식 부양을 해오며 야성을 거세해 놓고는, “언제나 밥값을 할까?” 걱정하는 이 어미와 도진개진이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