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 끝에 무죄로 자유

기사입력 : 2012년 09월 03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캄보디아 프놈펜의 프레소 교도소에서 살인누명을 쓰고 13개월간 수감생활을 하다 28일 풀려난 두 여성 김(37)씨와 조(여 32)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성장하는 캄보디아가 기회의 땅이 될 것으로 믿고 현지에서 일자리를 찾은 두 여성이 오히려 이국땅 감옥에 갇힌 것은 지난해 6월. 40대 한인 남성의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면서다.
 
 평소 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중고차 매매를 하고 있던 정모(43)씨가 새벽쯤 술에 취한 채 이들의 집을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정씨는 평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김씨에게 즉각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함께 돌아가자고 졸랐고, 이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김씨는 “방에서 얘기하다 술 깬 뒤 다시 얘기하자며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인기척이 없어 방으로 들어가보니 정씨가 방 화장실에서 드라이어 전선줄로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캄보디아 경찰은 이같은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통상 자살하면 목에 U자형 자국이 나는데 정씨의 목에는’한일자’형 자국이 나 있고 이는 뒤에서 목을 졸랐기 때문이라는 게 캄보디아 경찰의 주장이었다. 또 김씨와 함께 사는 조씨의 팔뚝에 긁힌 자국이 남아있다며 목이 졸린 정씨가 반항하다 낸 상처로 봤다. 이런 사건의 경우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이 필수인데 캄보디아 경찰은 부검조차 하지 않았고, 정씨의 시신은 사건 발생 4일 만에 화장됐다.
 자칫하면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JTBC가 취재에 나서면서 이들의 운명이 바뀔 조짐이 나타났다. 이들의 사연을 접한 JTBC는 캄보디아 현지로 취재진을 보내 경찰 등 수사 전 과정을 꼼꼼히 취재했다. 특히 변호인을 통해 캄보디아 경찰의 수사기록과 발생 당시 현장 사진 45장을 입수했고,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과 이숭덕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 서울법의학연구소 등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모두 정씨가 타살됐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JTBC는 이런 내용을 시사 프로그램 ‘탐사코드J’를 통해 보도했다. 보도 이후 상황이 급반전됐다. 보도 내용에 공감한 외교통상부의 의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본격적으로 사건을 검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조사를 통해 남자의 목에 난 자국이 전형적인 자살의 상흔임을 밝혔고 이를 캄보디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에 지난 5월 캄보디아 재판부는 국과수 법의학자를 현지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시기까지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김형중 박사는 법정에서 “정씨의 목에 난 상처는 앞에서 보면 ‘한일자’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목 옆에 자국이 남아 있는 U자 형태”라며 자살에 의한 자국이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또 교살의 경우 목에 줄을 한번 감아 돌린 상태에서 조르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 정씨의 목을 졸랐다면 목 뒷부분에도 줄자국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조씨의 손목에 난 상처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정씨가 반항하다 상처를 냈다면 상처 모양이 불규칙적이어야 하는데 조씨의 경우 가지런한 사선 모습이라며 이는 피부가 가려워 긁은 상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우리 국과수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반론에 접한 캄보디아 재판부는 두 번이나 선고 공판을 늦추며 고민했다. 국과수의 의견을 받아들일 경우 자국 검경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캄보디아 재판부도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28일 선고 공판을 통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두 사람이 살인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변호를 맡았던 쑤컴 펑 변호사는 “JTBC 보도와 한국 국과수의 조사가 재판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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