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옛날이야기가 주는 것

기사입력 : 2012년 12월 26일

 

한국어 고급반 학생들에게 ‘춘향전’이야기를 해 주었다. 일편단심 정절을 지키며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과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한 번 맺은 인연을 지켜 춘향을 찾는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 표정이었다. 캄보디아에도 그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 들려 준 이야기는‘심청전’. 몸을 바쳐서 효행을 실천하는 심청 이야기를 듣고는 ‘춘향전’보다 더욱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캄보디아에는‘심청전’과 유사한 이야기는 없다고 했다. 계속해서‘흥부전’과‘의좋은 형제’ 등을 들려주면서 캄보디아의 고전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캄보디아의 옛날이야기는 한국의 그것들과 달리 과정보다는 결과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나쁜 짓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하지만 최후에 원하는 것을 달성하면 그 주인공은 성공한 인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내용의 이야기도 있었다. 한국의 고전들이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중에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고 있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옛날이야기 속의 정신이 그 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많은 옛날이야기와 설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캄보디아다. 구전이 됐건 책을 통해서건 그런 것들을 접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면 사정은 확연히 달라진다.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거의 책을 접하지 못하고 사는 나라가 캄보디아다. 서점에 가 보면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프놈펜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는 곳에 가 봐도 진열돼 있는 장서가 몇 백 종에 불과하다. 옛날이야기 책이나 동화책 몇 권이 있을 뿐 문학에 관련되는 책이나 교양서적은 같은 것들은 서가 한쪽을 겨우 채울 정도로 빈약하다. 역사나 철학, 예술, 사상 같은 분야의 책은 거의 없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읽을 만한 책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건 청소년이건 책을 읽는 습관이 길러질 수 없고 대학을 나와도 평생에 책 몇 권 못 읽고 살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캄보디아는 인근에서 강력한 국가 형태를 지켜온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앙코르와트에 들어서면 사원 앞에 도서관 건물이 있을 정도로 책을 숭상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 맥은 근세에 이르러 끊어졌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지식인과 교사, 고급 기술자를 처단하는 한편, 책을 불사르고 교육 기관을 폐쇄하는 등 학문적 기반을 무너뜨린 폴포트 정권에 그 원인을 돌리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많은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 속에서 교훈을 얻고 생각의 깊이를 넓힐 수 있었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동화나 소설 시 같은 문학적 글들을 접했고, 더 나아가 생활과 교양, 예술, 기술, 학문에 관련되는 책들을 읽었다. 개인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책을 읽는 습관은 생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독서는 단지 지식을 넓히고 감동을 얻어 개인의 삶을 진작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그 안에 있다. 책을 통해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과학적 사고와 창조 정신이 길러져 학문과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다양한 정보 매체가 여기에 가세하여 국력을 신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캄보디아는 암담하다. 정신 작용을 고양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매우 허약하기 때문이다. 학문이 없고 예술이 없고 철학이 없으니 모든 방면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이나 산업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과 공부를 하면서 하찮은 것 같은 옛날이야기 하나가 그 나라 그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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