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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아세안 축제 물축제 노세 노세 공화국
“찰싹”, 남편의 뺨을 때렸다. 선홍색 피가 번진다. 벌써 몇 시간째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의 뺨에 하필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던 것이다. 프놈펜에서 개최하게 된 ASEAN 정상회담으로 인해 각국 정상들이 통과할 도로변의 교육기관을 비롯해 주요 시설에까지 엿새 동안의 공식적인 휴업조치가 내려졌다. 실제로 거리에 나서보니 시내 대부분의 도로가 차단돼 있어 도시전체가 정지 된 느낌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차량사이에 끼어 속이 부글부글 끓던 터에 모기라도 후려쳐 잡고 보니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눈치 빠른 모기였건만, 삼가 명복을…) ASEAN 회기 동안의 강제 휴가에 이어 물 축제 연휴까지 연달아 있어 많은 학교와 사업장은 보름가까이 문을 닫게 된다니, 노세 노세 공화국이 따로 없다. 시간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사업자의 경우 속 깨나 탈 터이다.
캄보디아 국민을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제복 입은 사람들에게 불문곡직 휘둘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돈은 권력의 체현이다”는 말과는 달리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거머쥔 축이면 서민 주머니 후릴 궁리에 여념이 없다. 아무리 처우가 열악하다고 하나 관청에서, 노상에서, 심지어 교실에서조차 온갖 구실을 들어 민초의 피를 빠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으니. 12세기, 타락의 극치를 달리던 교황청의 횡포에 대한 기록 중 흥미로운 사례가 떠오른다. 서민을 최대한 쥐어짜기 위해 같은 죄목이라도 정교하게 세분하여 벌금을 매겼다. 교회에 가는 도중인 처자를 강간한 사람보다 교회에서 돌아오던 처자를 강간한 사람에게 벌금을 더 무겁게 부과하는 식이다. 교회에 다녀오는 길이라면 예식을 통해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 순결해졌기 때문에 죄가 더욱 크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다. 성자필쇠의 섭리를 어찌 막으랴, 그들은 오래지 않아 종교개혁의 칼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캄보디아가 내로라하는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돼 이 땅에 빌붙어 사는 입장으로서 뿌듯하긴 했지만, 행사의 안전만을 고려해 도로를 장기간 봉쇄하는 식의 원시적이고 방만한 행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동아시아 경제영토가 크게 확장될 것이라며 고무돼 있으나, 모든 정치적 행위의 목적이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음을 상기할 때,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어떤 위장술을 쓰는지, 누구의 삶이 위태로워질는지, 국익이라는 포장지에 가려진 게임의 법칙을 모르는 채 노세 노세에 편승해 가는 이 착한 국민의 나약함 또한 서글프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까지 포함된 각국의 위대하신 정상들 중 “작금의 작전이 민생에 심한 고통을 주지 않겠나?” 난색을 표했다는 보도 하나 없는 것으로 보아 후진국이고 선진국이고 정치인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는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 나순 (건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