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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국가의 자격
프놈펜에서 건축공사는 현장의 똥을 치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민원이 최우선인 한국에서는 이웃들에게 사과박스나 굴비세트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양쪽 다 구리긴 마찬가지다. 캄보디아 2008년 통계에 따르면, 화장실 보급률이 33.1%라고 한다. 도시는 평균치보다 웃돌 것으로 예상되지만, 으슥한 곳을 찾아 거사를 치룰 수밖에 없는 서민의 고초가 말이 아닐 터이다. 벌건 대낮 프놈펜 도심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 담벼락에 찰싹 붙어 오묘한 자세로 서있는 남자들만 봐도 그렇다. 6,70년대 우리나라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담장과 전봇대마다 큼직하게 그려져 있던 가위그림이나 흉흉한 경고문 따위가 없는 걸로 보아 이곳 사람들 인심이 더 넉넉하지 않나 싶다.
우리네 세대는 여러 화장실을 거쳐 왔다. 대자연이 온통 화장실인 천연식에서부터 푸세식, 이동식(요강), 화변기식, 좌변기식, 비데식, 건강 체크까지 해주는 의료식에 이르기까지. “문명은 화장실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어느 문화연구가의 견해처럼, 서구문명은 유구한 세월에 걸쳐 화장실을 연구, 개량해 왔다. 인류와 배설물의 관계가 불가분(不可分), 불가분(不可糞)인 까닭이다. 우리는 한 세대에 그 일련의 과정을 몽땅 경험했으니 말 그대로 압축성장세대다. 현재 모든 형태의 화장실이 공존하고 있는 캄보디아는 동시다발세대라고 해야 할까, 여러 단계를 훌쩍 건너뛰는 축도 있으니 추월성장세대라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 행사가 많아진 90년대 초부터 대형건축물 1층에 일반인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용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어서 공원과 유원지 등에도 표준설계에 의한 공중화장실을 널리 보급했다. 불행한 것은, 우리나라 공무원의 지나친 애국심 탓인지 빈곤한 상상력 탓인지 대부분의 공중화장실 지붕이 한식으로 디자인 됐다는 점이다. ‘공중화장실은 한식지붕’ 이라는 인식이 박히다보니, 먼발치로 고궁이나 전통한옥, 남대문지붕만 보여도 남대문 쪽에 요의를 느낀다는 해외 관광객에 대한 우스개 소리가 떠돌 정도였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배설에 대한 수치심과 두려움을 타고난다고 한다. 완전군장한 군인이라도 배설을 할 때만은 물리적 정신적 무장해제를 하지 않을 수 없는지라 전쟁터에서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천연식과 푸세식까지는 공범자(?)나 망을 봐주는 사람과 동행했던 어릴 적 기억을 갖고 있으리라. 거울 같은 현대식건물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몸을 숨길 데가 없어진 도시서민의 불행한 처지를 말해 뭐하리.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라” 가 동서고금의 건강명언이다. 전 국민의 ‘배변의 평화와 안전 유지’ 는 모름지기 국가의 의무다. 관광산업의 비중이 날로 커가고 국제행사도 잦아지는 캄보디아로서 공중화장실 설치문제는 늦은 감이 있다./ 나 순 (건축사 , http://blog.naver.com/naarch )
*뉴스브리핑 캄보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