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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올해엔 생일이 없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가면 언제나 페인트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길이 2.8km에달하는 다리로, 한 사람이 매달려 처음부터 끝까지 칠하는 데 꼬박 일 년이 걸린다고 한다.금문교가 개통된 이후 오랫동안 그 일을 계속해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다리보수공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고 하니, 그 페인트공은 일 년간의 부단한 붓질 끝에 눈앞의 다리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페인트칠을 시작하곤 했을 터이다.
매일을 하루같이 금문교에 매달려 같은 일을 반복했던 그 페인트공은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것일까,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분명 시간을 즐기고 있노라’, 기나긴 합리화의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닐까. 일과 후 금문교가 바라다 보이는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저 대단한 교각의 새 페인트 지점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노라’, ‘이 몸이 저 철교의 쇠락을 늦춰주고 있지’, 그 덧없는 일상에서도 삶의 의미를 거뜬히 찾아내곤 하지 않았을까.
년 초에 집안에서 빈둥거리게 되는 날이면 친지와 지인들 생일을 챙겨 달력에 표시하는 것으로 소일하곤 한다. 일 년 전, 그 일 년 전, 더욱 먼 일 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생일을 대충 챙기고 보니 정작 내 생일이 올 달력에 빠져있다. 생일을 음력으로 쇠는 구닥다리로 생일이 늦어, 올 3월에 윤달이 낀 탓에 다음 해로 훌쩍 넘어가버린 모양이다. 이렇게라도 나이 한 살이 굳었으니 그 기념으로 ‘올핸 정글을 향해 떠나자!’ 객기 부렸던 새해 초입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해도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그날이 그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세월을 흘려보내는 사이, 매년 눈에 띄지 않게 비겁해지고 무감각해지는 느낌이다.
밑 빠진 독과 같은 우리네 일상,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경탄해본 적이 언제던가. 금문교의 그 무던한 칠쟁이도 필시, 굴러 떨어지곤 하는 바위를 끊임없이 정상에 올려놓아야 했던 영원한 죄수의 화신, 시시포스 이야기의 쓰디쓴 유머를 이해하고 있었으리라.
그리하여 세월은 여지없이 모든 것을 풍화시킬 것이다. 혹자는 강한 태양광선 아래 미물 천국인 열대지방에서의 쇠락은 훨씬 빠르고 가혹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살았달 게 없다’, 어릴 적 듣곤 했던 어른들의 한탄이 귀전을 맴돈다. 죽기 전에 캄보디아 정글 구경이나 해보자며 장만해온 두 쌍의 정글화는 어찌되었을까. 신발장 문을 열어보니, 한 번도 발을 들이민 적이 없건만 시간의 잔인한 장난에 때깔을 잃고 남루해져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나란히 주인의 행차를 기다리며./ 나순·건축가
*뉴스브리핑 캄보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