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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대비와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내가 사는 집 바로 뒤부터 호수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호수는 없고 한쪽에 늪지대가 조금 펼쳐져 있을 뿐 드넓은 공터뿐. 공터에는 사방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이 쪽 저 쪽에서 매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매립이 끝난 한쪽에서는 땅에 거대한 철골을 박느라고 여간 시끄럽지가 않다. 아마 상당히 큰 건물이 올라갈 모양이다. 옛날에는 이곳 일대가 호수나 늪지대였는데 매립을 해서 택지로 바꾸는 것 같다. 프놈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곳이 꽤 많이 눈에 띤다. 호수나 늪지뿐만 아니라 강변을 매립해서 택지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새로운 주택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런 추세로 나가다 보면 프놈펜 시내의 웬만한 곳은 모두 건물로 들어차서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호수나 늪지가 거의 사라질 것 같다.
프놈펜은 평지 위에 조성된 도시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구릉 하나 없는 평지다. 비가 내리면 시내 곳곳에 물이 차기도 한다. 다행히 비가 오래 내리지 않아서 비가 그친 후 조금 지나면 물이 다 빠져 평시와 다름없이 된다. 우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프놈펜 바로 옆을 흐르는 메콩강이나 톤레삽강의 수위가 시가지 표고의 4,5미터 아래까지 차올라서 물난리를 자주 겪고 자란 우리 같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혹시 강이 범람하지나 않나 하는 걱정 때문에. 그렇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전혀 걱정이 없는 눈치다. 늘 그래 왔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도심지 곳곳에 있는 호수나 늪지대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것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빗물을 저장했다가 서서히 강으로 내려 보내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호수나 늪지대인데 그것들이 없어지면 내리는 빗물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개발을 하면서 면밀한 계획을 세워 물은 제대로 다스려 나가는지 궁금하다.
2년 반 전에 이 지면에 썼던 글을 다시 옮겨 보았다. 캄보디아에 와서 1년 동안 관찰하고 쓴 글이었는데 요즘에 들어 그 때 글에서 적시했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비가 내린 후 공항 옆 도로를 지나다 보면 도로 한쪽이 물에 침수되어 자주 교통 체증을 겪곤 한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비가 일시에 더 내린다면 공항 활주로까지 침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 몇 년 사이 공항 주변에 건축 붐이 일면서 공항보다 지대가 낮은 지역을 일제히 매립해서 높이다 보니 빗물이 공항 쪽 낮은 지대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여기뿐만이 아니다. 프놈펜 서쪽 지대에 조성되고 있는 ‘그랜드 프놈펜’ 주변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기에는 1m 이상 물이 차던 들판을 매립해서 주택지로 바꾸고 나니 그 주변 낮은 지대의 수위가 평년보다 50cm 이상 높아져서 몇몇 가구는 물을 피해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내린 빗물이 호수나 늪지대에 고여 있거나 넓은 지역에 퍼져 있다가 서서히 증발하거나 땅 속 으로 스며들던 자연의 순환 법칙이 개발이라는 이름의 인위적인 변화에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프놈펜 시내에는 하수 시설이 거의 되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비가 한바탕 내리면 도로건 주택지건 가릴 것 없이 곳곳에 물이 찬다. 지금까지는 시간이 좀 지나면 서서히 빠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호수나 늪지대가 매립되어 건물이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전에는 문제가 없던 곳까지 물이 차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하수 시설을 갖추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매년 되풀이될 것이다. 더 이상 자연에 의지해서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집만 지을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종합적인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도 빤히 들여다보이는 일인데 곧 닥칠 문제에 대한 대비와 준비가 없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