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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땅에서 피어나는 야생화를 보면서
비가 오지 않아서 나무 잎사귀건 꽃잎이건 모두 흙먼지에 덮여 있어 요즘은 산뜻한 야외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야외 주차장 한쪽에 드러난 흙밭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꽃 하나 때문에 그나마 아침을 신선하게 맞게 된다. 줄기가 땅으로 기어가면서 해가 밝아 옴에 따라 일제히 꽃을 피웠다가 햇살이 강해지면 시들어버리는 꽃, 시간에 따라 피는 습성이나 자줏빛 꽃 모양이 나팔꽃과 흡사해서 더욱 정감이 간다. 몇 달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땅을 헤쳐 봐도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데 그런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억척스럽게 꽃을 피워 낸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가 않다. 금방 피었다가 지기 때문에 좀 아쉽기는 하지만 아침마다 맑은 자태로 새로 피는 꽃을 볼 수 있으니 그 만큼 깨끗하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 보니 가는 곳마다 흙 먼지투성이요 하루만 청소를 하지 않아도 방바닥이며 책상이며 이곳저곳이 먼지로 뽀얗다. 3월을 지나면서 서서히 더워져서 선풍기를 켜는 횟수도 점점 늘어나고 자주 샤워를 해야 한다. 우기까지는 아직 두어 달이 더 남았는데 그 때까지 어떻게 참고 기다려야 할지 조금은 걱정이 된다.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1년의 반 정도가 건기라서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데,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 기간을 어떻게 견디는지 무척 궁금하다. 프놈펜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수도 시설이 되어 있어서 물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아도 되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요즘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린다. 집집마다 커다란 항아리를 비치해 놓고 우기에 물을 받아 놓았다가 건기에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어떻게 수개월을 버틸까?
캄보디아에는 톤레삽 호수가 있다. 유람선을 타고 두 시간을 달려도 육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호수로서 농사를 짓거나 고기잡이를 하면서 사는 수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기도 하다. 우기에 호수로 들어와 가득 찼던 물이 건기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빠져서 호수 유역의 3분지 2 이상이 육지로 변했다가 우기가 되면 다시 큰 호수로 변한다고 한다. 그저께 저녁에는 더위를 식히려 강변에 나가 보았더니 톤레삽 호수에서 내려오는 톤레삽강의 수위가 우기에 비해 10여 미터 이상 내려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톤레삽 호수 유역의 반 이상이 뭍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유유히 흘러내려가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톤레삽 호수의 물을 그냥 바다로 흘려보내지 말고 잘 가두어 두었다가 캄보디아를 적시는 젖줄로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비가 안 와서 모내기를 못해 쩔쩔매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오직 하늘에 의지해서 농사를 짓던 시절 얘기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는 천수답이 거의 없다. 곳곳에 둑을 쌓아 댐을 만들고 바다를 막아 저수지를 만들어 그 물을 잘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물이 없어서 광활한 농토가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캄보디아의 현실이요, 마실 물조차 부족해서 건강하고 위생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이 캄보디아 사람들의 실상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이 나라 사람들이라고 왜 안 해 봤겠는가? 많은 돈이 들어가는 문제라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단단하고 척박한 땅에서 고운 빛깔로 꽃을 피워내는 이름 모를 야생화를 눈앞에 두고 꼭 캄보디아 사람들을 보고 있는 듯해서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처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일 아침에는 꽃에 수돗물이라도 흠뻑 뿌려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