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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고무나무와 바오밥나무
세계보건기구의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세계에서는 매일 1억 건의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중에서 91만 건이 임신으로 이어지고, 그 임신 중 25퍼센트는 원하지 않는 임신이며, 50퍼센트는 예정되지 않은 임신이라고 한다. 우리 중 75%는 실수의 산물인 셈이다. 자연환경보존에 기여하는 사물에 대해 연구한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에서 저자 존 라이언은 그중 한가지로 콘돔을 꼽는다. 연간 60억~90억 개가 생산되는 천연고무 제품인 콘돔이 지구 환경파괴의 일등공신인 “인간”이란 종의 무분별한 번식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무공해 교통수단으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자전거”,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에어컨의 10분의 1 전력으로 가동되는 “천정선풍기”, 에너지소모 없이 태양과 바람만 있으면 건조되는 “빨랫줄” 등, 일곱 가지 중 네 가지 품목의 요소요소에 모두 ‘고무’가 사용된다.
고무나무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수령 5~6세 이후 30년 동안은 고무 체액을 수집할 수 있다. 고운 결과 미색을 띄는 고밀도목재인 고무나무는 고무즙 생산수한이 다 되면 고급가구와 완구용 목재로 베어진다. 나머지 잔가지들까지 숯을 만드는데 쓰인다.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는 원유 추출물인 합성고무에 비견해 천연고무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 천연고무는 동남아산이 대부분 인데, 캄보디아 고무사업도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다. 버릴 게 하나 없는 고무나무가 최빈국 캄보디아에도 시혜를 베풀 모양이다.
사람을 종종 나무에 비유하기도 한다. 소풍 나온 듯 인생을 지나쳐 온 사람이 아니고야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만은, 그래도 고무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있어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게 된다. 27년에 걸친 수감생활을 이겨내고 흑백 갈등의 굴곡 많은 대통령직을 역임한 이후 남은 생애를 국민의 겸손한 종으로 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그렇다. 2010년 UN은 그의 정신을 기려 생일인 7월 18일을 ‘넬슨 만델라의 날’로 정하고 살아있는 위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병세가 위중하지만 존재자체만으로도 만인의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서둘러 뽑아내지 않으면 땅 속 여기저기에 구멍을 내고 별 전체를 파괴해 버리는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같은 사람도 있다. 전대미문의 인권유린에 대한 유래를 찾기 힘든 관용에도 불구하고 고가품으로 집안을 휘갑하고 수백억재산가 자손과 왕년의 부하를 거느리며 떵떵거리면서도, “29만원” 발언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렇다. 군화발로 <정의사회 구현>을 하려는 것은 창녀가 진정한 사랑을 손님 중에서 찾게 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으리라. 이 지구별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해내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일까.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