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192화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왕실 어경절” 행사

기사입력 : 2024년 12월 18일

ploughing-day▲2019년 왕실 어경절 행사의 모습

왕실 어경절(Royal Ploughing Day)은 전통적인 쌀 재배 시즌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열리는 고대 왕실 의식이다. 날짜는 왕실 점성술사나 천문학자가 달의 모양이 변하는 주기를 따라 계산하는데 올해는 마침 이번 달 5월 8일이다. 캄보디아에서는 매년 지방을 바꿔가며 국왕이 몸소 납시어 이날 쟁기질 의식을 주관하는데, 이를 위해 올해는 깜뽕톰주에서 지난 1월부터 행사를 준비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부터 3년 연속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만큼 올해 행사는 각별하다.

이러한 농업 의식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서 엿볼 수 있다. 비슈누 신의 인간계 화신인 라마 왕자의 부인은 ‘시타(Sita)’이다. 그녀는 비슈누 신의 부인인 ‘락슈미’ 여신의 화신으로 간주한다. 그녀의 출생담에 따르면, 시타 부인의 부왕은 어경절 행사를 거행 중이었다. 그때 땅을 갈다가 쟁기질로 인해 생긴 고랑 사이에서 여자아이를 얻었다. 이에 산스크리트어로 ‘고랑’을 뜻하는 말에서 파생한 ‘시타’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쟁기질 의식의 역사는 푸난 시대(1~6세기)에 고대 인도에서 전해졌다. 이 의식은 『라마야나』의 캄보디아 버전인 『리엄께(Reamker)』와 기타 불교 문헌에도 등장한다. 앙코르 보레이(구 푸난 왕국의 수도)에서 출토된 ‘발라라마’ 신상은 쟁기를 잡고 있는데 6세기에 제작됐다. 발라라마 역시 비슈누 신의 화신으로 힌두교에서 ‘농업과 힘’을 상징한다. 신상은 왕실 어경절 행사를 위해 조각되었으며 의식과 관련된 가장 초기의 증거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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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왕실 어경절 의식은 일반적으로 군주 또는 지명자가 주재한다. 때때로 군주 자신이 의식에 참여해서 두 마리의 신성한 소가 쟁기질을 하도록 부리기도 한다. 왕이 농사를 시작하는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식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일구는 단초가 된다. 소가 땅에 고랑을 갈면 뒤따르는 왕비의 대역이 쌀 종자를 뿌린다. 이렇게 세 바퀴를 돌아서 쟁기질을 마치면 소에게 쌀, 옥수수, 콩, 참깨, 갓 자른 풀, 물, 술 등의 먹이가 제공된다. 이때 소가 무엇을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그해 쌀 수확이 풍년일지 아닐지를 예측한다. 2019년에 씨엠립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소가 “쌀 85%, 옥수수 90%, 콩 85%를 먹었다”고 발표하면서 이러한 작물의 수확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편 캄보디아농업연구개발센터 쏨위투(Som Vitou) 소장은 수확량을 예측하는 이러한 점성술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실상은 기후 변화로 인해 캄보디아의 몬순 강수량과 건기가 점점 더 예측할 수 없고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사에 의존하는 농부들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조화 앞에서 생계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쏨위투 소장은 정부가 차라리 농부들에게 이러한 변화와 문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가뭄을 대비해서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기 위해 큰 연못을 파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지금은 캄보디아의 명운이 쌀농사의 풍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다시피 캄보디아 경제의 4대 핵심축은 건설, 관광, 농업, 봉제이다. 전 세계의 경기에 따라 좌우되는 건설, 관광, 봉제는 3년여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회복이 더디기만 하다. 한 줄기 빛에 가까운 희망은 오직 농업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매년 기록적으로 발발하던 홍수의 영향을 유독 작년만큼은 민감하게 반응해서 농림수산부 장관의 경질까지 감행했다. 이어 젊고 훤칠한 신세대 장관의 의욕적이고 부지런한 행보는 캄보디아 농업이 새롭게 도약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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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영심

前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