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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되찾은 기쁨 광복 79주년 그 날을 기억하며 – 잊어서는 안될 8.15 광복절의 의미 – 캄보디아의 광복의 날 [독립기념일]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영예롭게 회복한(光復) 날(節)인 광복절이 다가온다. 우리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비록 고국을 떠나 캄보디아에 살고 있지만 광복 79주년을 맞아 한국인으로서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광복절에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하나는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다른 하나는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로부터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1910년부터 35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 동안 국내외에서 치열한 독립 운동이 벌어졌지만, 일본의 폭압과 친일 세력의 방해 공작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가운데 1937년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그 기세를 밀어붙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지구상 첫 투하된 핵폭탄을 맞고 그 위력에 억 눌린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35년 만에 해방을 맞았다.
일본이 패망하고 바로 주권을 회복할 줄 알았으나,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으로 한반도를 다시 분단 점령하면서 남한에는 미군정이 들어섰고, 우여곡절 끝에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명명하여 잃었던 국권을 회복한 것을 국가에서 경축하는 국경일로 지정했다. 광복이란 빛(光)을 회복한다(復)는 뜻이 아닌, 영예롭게 (무엇인가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복에서 광(光)이란 존중의 뜻을 담는 글자로서, “영예롭게”라는 뜻을 부여하는 부사적 기능을 한다.
광복절은 삼일절,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과 더불어 대한민국 5대 국경일로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뜻 깊은 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주독립의 꿈을 잃지 않고, 어디서든 삶의 터전을 일구며 독립운동을 펼친 선열들과 독립유공자를 마음 깊이 기억하여 유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날이 되어야겠다.
한편 캄보디아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되찾은 역사가 있다. 프랑스 식민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캄보디아의 독립기념일은 11월 9일이다. 다만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이라면 일단 햇수부터가 다르다. 캄보디아는 35년간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와 달리 장장 90년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또한 놀라운 것은 3배 가까이 되는 식민지배 기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프랑스 관계는 한국-일본 관계에 비해 과장하자면 3배 가까이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캄보디아는 1863년에 프랑스 보호국 즉,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1887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일부로 편입됐다. 1907년 3월 23일 프랑스와 태국의 조약으로 앙코르 일대 영토를 태국으로부터 돌려받아 오늘날 캄보디아 영토의 대부분이 형성됐다.
1940년에는 인도차이나에 주둔하기 시작한 일본군에 의해 캄보디아의 영토 일부가 태국에 넘겨지기도 했다. 1941년 왕위에 오른 시아누크는 일본군이 프랑스군을 공격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것을 지지하며 1945년 3월 12일 프랑스로부터 캄보디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캄보디아는 다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됐다.
그럼에도 캄보디아의 독립운동은 계속돼 1947년 헌법이 공포됐고, 1949년에는 프랑스연합 안에서 사법권과 군사권을 제외한 독립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 뒤 1953년 11월 9일에는 사법권과 군사권을 회복해 9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완전한 주권을 되찾았다.
매년 11월 9일 캄보디아 국왕과 총리 및 고위급 관료와 캄보디아 왕립군은 독립기념탑에서 국가적 행사를 거행한다. 특히 캄보디아의 독립 역사를 이끈 故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의 영웅적 행위를 기린다. 또한 90년간 프랑스 보호령으로부터 벗어난 날 창설한 캄보디아 왕립군(RCAF)을 기념하기도 한다.
올해에는 안타깝게도 재외공관 테러경보 ‘경계’ 상태 유지로 인해 매년 주캄보디아대한민국대사관(대사 박정욱)과 재캄보디아한인회(회장 정명규)가 주최하던 광복절 기념행사가 내년을 기약한다.
캄보디아에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독립 만세’ 만세삼창을 외치는 광복절은 올해는 아쉽게도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성대한 행사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기리는 마음에 있을 것이다. 광복을 처음 맞이한 당대 사람들은 1919년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태극기가 압수된 지 26년이나 지나 마땅한 태극기가 없음에도 그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틀리고 엉성한, 심지어는 일장기에 먹을 덧칠해 조약하게 그린 태극기를 들고 나와 광복을 누렸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며, 캄보디아에서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아 79년 전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해보자./뉴스브리핑캄보디아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