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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호의 국립소아병원에서 드리는 편지] 여섯 번째 편지 ‘뎅기열’
어느 여유로운 토요일 오전에 저는 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여행을 오신 분이었는데 자녀분이 설사를 하고 배가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증상을 들어보니 흔한 여행자 설사(물갈이)인 것 같아서 걱정 마시라고 안심을 시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캄보디아에만 있는 풍토병은 아니겠죠?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캄보디아에 풍토병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때 그 분에게 전화로 ‘캄보디아에는 별다른 풍토병이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라고 얼버 무리며 말씀 드렸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캄보디아에 풍토병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얼마전 코이카 파견인력을 대상으로 건강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 때 받은 제목은 ‘캄보디아 풍토병’이었습니다. 캄보디아에 무슨 풍토병? 그러나 과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풍토병은 그 지역에만 유행하는 감염병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캄보디아에 유독 많은 감염병은 무엇일까? 제가 내린 결론은 바로 ‘뎅기열’(ជំងឺគ្រុនឈាម, 쭘응으 끄론 치음)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뎅기열은 캄보디아에만 있는 병은 아닙니다.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지역, 즉 적도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두른 띠같은 분포를 합니다. 캄보디아 주위의 태국, 라오스,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 나라에서 뎅기열 감염이 많이 생깁니다. 캄보디아에서 매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뎅기열에 걸리고 이로 인한 사망자도 나오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풍토병이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 병원 캄보디아-한국 친선 건물(Cambodia Korea Friendship Building, 아끼어 꼬레) 4층은 D 병동(Salle D, 쌀 데)라고 부르는 뎅기열 병동입니다. 한국에서는 뎅기열 환자가 거의 않습니다. 미국, 유럽, 중국, 러시아, 일본에도 거의 없습니다. 주로 동남아시아나 남미를 여행하고 온 분들이 열이 나는 경우에 간혹 생기는 정도입니다. 저는 전공의 시절에 뎅기열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군대 대신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 한 교민분이 열이 나서 피검사를 해보니 백혈구와 혈소판이 낮아져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뎅기열의 특징적인 피검사 소견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곳 캄보디아는 일단 열이 나면 뎅기열을 가장 먼저 의심할 정도로 흔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국립소아병원에는 뎅기열만 치료하는 병동이 있습니다. 의료진들은 뎅기열의 증상과 진단, 치료에 대해 경험이 많습니다. 저는 캄보디아에 와서 뎅기열에 대해 배우며 캄보디아를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성인들을 주로 치료하는 러시안 병원(Khmer Soviet Friendship Hospital, 문띠뻳 로씨)이나 깔멧 병원 (Calmette Hospital, 문띠뻳 깔멛)에는 감염병동에 뎅기열 환자가 입원을 하지만 따로 뎅기열 병동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아는 다릅니다. 소아는 뎅기열에 걸리면 중증으로 진행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국립 소아 병원에 따로 뎅기열 병동을 만드신 것 같습니다. 뎅기열 발생 상황이 몸으로 느껴지는 것은 뎅기열 병동에 복도 침대 상황입니다. 환자가 늘면 병원 복도에도 침대를 추가로 놓게 되는데 요즘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뎅기열은 연중에 우기가 시작되는 5월을 기점으로 높아졌다가 10월쯤 되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뎅기열에 관해 찾아 보다 보니 캄보디아 보건부(Ministry of Health, MoH)에서 만든 뎅기열 치료 가이드라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이드라인(Guideline)은 그 분야의 전문가 분들이 모여 치료 방침을 정해 놓은 일종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 가이드라인의 첫 페이지에는 서문이 나오는데 캄보디아 정부에서 뎅기열을 얼마나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뎅기열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3-5년 주기로 환자가 폭발적으로 느는 것을 주기적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뎅기열을 정의하는 중요한 단어들도 상세히 나와 있었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DENV-1 부터 DENV-4까지 있는데 이것은 뎅기 바이러스(Dengue Virus)의 종류가 크게 4가지라는 의미이고 이 때문에 3-5년마다 주기적으로 폭발적인 환자 증가가 있다고 합니다.
또 뎅기 모기에 물려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더라도 약 75%는 증상 없이 지나가고 나머지 약 25%에서 열이 나는 증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 또한 단계가 있는데 뎅기열(Dengue Fever, DF), 여기서 더 진행하면 뎅기출혈열(Dengue Hemorrhagic Fever, DHF), 여기서 더 진행하면 뎅기 쇼크 증후군(Dengue Shock Syndrome, DSS) 이 된다고 합니다. 위중한 단계로 진행할 위험이 있는 고위험군은 다음과 같습니다.
1세 이하 영아, 임산부, 노약자, 다른 만성병 환자, 비만 혹은 출혈, 의식 소실, 혈압 저하, 어지러움, 숨찬 증상 등입니다.
여기서 오래 사신 교민분들이라면 뎅기열을 경험해 보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뎅기열에 걸려 너무 아파서 계속 울었다는 분도 보았고, 체중이 많이 빠져 힘이 없다는 분도 만나 보았습니다. 뎅기열은 분명 캄보디아에 사는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중요한 적인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평소에 충분한 영양 섭취와 휴식, 규칙적 운동, 모기 조심(모기기피제, 긴소매 옷)하시기 바랍니다.
캄보디아 정부에서도 뎅기열에 대한 예방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대부분 병원에서는 뎅기열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잘 되는 편이니 열이 나거나 심한 근육통 등 의심 증상이 있으시면 병원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뎅기열을 예방하고 더욱 건강한 캄보디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국립 소아 병원이나 환자 관련 문의가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캄보디아 KOICA 의사 서정호 올림 ( 011 944 511, 텔레그램, 카톡 모두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