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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창문을 열고] 이것만 기억해주세요
(2021년 11월 26일 연재 칼럼)
나이 값을 해야 할 텐데…
어느 날 인가부터 깜박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밥 먹고 돌아서고 나면 지갑을 어디에 놨는지, 친구와의 약속은 몇 시였는지, 마누라가 뭘 사오라고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육십이 되니까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첩에 적어놨기만 했던 전화번호들이 이제는 나를 조롱하고 있다. 거봐, 너도 별거 없지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아 나도 늙어가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엄습했었다.
그러던 중, 스쳐 지나가는 생각. “이제부터는 이전의 삶의 방식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되는구나”하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렇다. 이제는 기억력을 믿지 말고, 기억을 못 해도 자괴하지 말고, 그저 나이가 들어 깜빡깜빡하는 노인이 되어간다고 내려놓아 버렸다. 그러고 보니 마음이 편하다. 잊어버렸다는 핑계도 자연스럽고…
한 번에 하나 이상의 습관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단지 몇 개의 습관만을 바꾸어도 인생에 큰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변화에 꼭 필요한 한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끈기이다. 끈기의 습관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끈기를 발휘할수록 더욱 끈질긴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끈기는 우리의 습관을 바꾸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즉시 튀어나온다. 하지만 개구리를 물에 넣고 천천히 끓이면 그 개구리는 점진적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물속에 죽을 때까지 그대로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개구리와 비슷하다. 변화가 천천히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는 습관의 동물이라는 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좋건 싫건 우리가 갖고 있는 습관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 가운데 최대 90%는 모두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을 입고, 신문을 읽고, 식사를 하고, 출근하는 그 모든 과정이 습관적으로 이루어진다. 매일 수백 가지 습관이 반복한다. 이제부터 나는 기계적인 습관에 의존할 것이다. 책장을 다시 정리해서 나에게 필요한 책들을 따로 따로 분류할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메모장에 기록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기억이 나지 않아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용돈을 숨길 때도 이제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 암호마저 기억이 안 나면 어찌 할 거냐? 그럼 어쩔 수 없다. 그렇게라도 살아가야 한다.
이 글은 아버지의 글(2003-2018년까지 연재했던 정지대 발행인의 ‘창문을 열고’ 칼럼)에서 발췌했습니다.
지난 15일 밤 저희 아버지를 찾기 위해 기도로 도움으로 마음으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날 밤 새벽까지 프놈펜 곳곳을 서행하던 불빛, 눈물의 기도와 응원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지의 옛 칼럼 말미처럼 지금은 암호마저 기억이 나지 않게 되셨지만, 아버지를 향한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만은 끝까지 기억하시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