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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창문을 열고] 화상
(2021년 9월 23일 연재 칼럼)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던 어느 금요일 오후. 텔레그램 메시지에 답변을 쓰고 있는데 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날카롭고 애절한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갔다. 한 쪽 다리가 뜨거운 커피포트 물에 젖어 있었고 아이는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재빨리 바지를 벗기고 찬 물을 붓고 얼음을 가지고 열기를 빼내면서도 머릿속은 그 어떤 생각도 자리 잡지 못했다. 울부짖는 아이를 달래가며 놀란 내 감정은 고개도 못 내민 채 그렇게 손을 잡고 기도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제발요..’
아이가 놀라지 않게 다독여야 했다. 무서운 속도로 물집이 부풀어 오르는걸 보고 심장이 몇 번은 덜컹 거렸지만 질끈 눈을 감을 수도 무턱대로 괜찮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아이를 눕히고 얼음과 젖은 수건으로 다리를 싸매고 응급실에 가는 내내 아이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통스러워 한다. 제발.. 제발 이 고통만 없어지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손을 붙잡고 크게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아이는 더 큰 소리로 기도해달라고 했다. ‘엄마.. 엄마 기도해줘. 계속 기도해줘.’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으면서 30분 만에 병원에 도착하고 응급처치를 기다리며 다친 다리를 다시 보는데 물집이 터져서인지 처음 다쳤을 때보다는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환부 부위가 너무 넓어서 아이의 고통이 쉽사리 가라앉진 않았다.
의사는 열흘 정도 치료를 하면 호전될 것이라고 2도 화상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 같은 순간 내 머릿속을 자욱하게 덮었던 수 만 가지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제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 붕대를 감고 집에 온지 7일째, 통증은 아직 있지만 조금씩 간지럽다고 한다.
한시도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의 아인데 걷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생활하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해지다가도 아찔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모든 것이 다 감사해진다. 어서 나아서 다시 폴짝폴짝 뛰어놀자. 네가 좋아하는 춤도 많이 추자. 잘 견뎌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