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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칼럼]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스치면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스치면“아 ! 이제 가을인가”하고 자신을 돌아다보던 세월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옷깃에 스며 파고들면“아! 이제 겨울인가”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노심초사하던 세월들이 지나갑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저도 서서히 노인이 되어갑니다.
고등학교 홈피에 가끔 글을 쓰다가도 올라오는 글에 배어 있는 히히덕거림과 서로 마주 보는 낄낄거림이 부러워 스스로 물러나 허전해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캄보디아의 빈들에 혼자 내동댕이 쳐있는 듯한 소외감과 같이 하지 못하는 자격지심, 그리고 쓰여 지는 글에 배어 있는 무거움이 혼자 세상의 고민을 다 짊어지고 가는 잘난 척으로 보일 까 봐서 였을 것입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손을 내어 마주 잡을 수 없는, 이곳에서는 찿을 수 없는 일상의 행복들에 대한 부러움이었겠지요.
“인생의 방황을 무엇과 비슷하다 말 할 것이냐?
아마도 기러기가 눈덮인 진흙탕을 걷는 것 같지 않을까?
그런데 눈밭에 우연히 진흙 발자국을 남기기는 해도
날아가 버린 기러기 동으로 갔는지 서로 갔는지 알 수가 없구나!”
이제 내년이면 내 나이도 60이 되어 갑니다. 완연히 노란 잎사귀가 흩날리는 은행나무 사이를 걸어가면 어울리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이 세월을 어찌 살아 왔을꼬? 돌아보면 무엇을 하고 살아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 가을 한국에 갔을 때‘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사왔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저술가 소노 아야코의“나이 들어감을 경계하는 책” 즉, 계로록입니다. 사실, 나이 들어가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한 책은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공자 맹자가 알려준 책 중에서 가끔 보았던 구절들이 몇몇 있었지만, 이 책만큼 조목조목 노인이 되어서 지켜야 할 세부사항을 적어 놓은 책을 본 적은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호로자식 소리들을 일이죠!!
그런데 저에게는 이 책의 울림이 상당히 컸습니다. 인생의 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어나는 손자들에게 나는 어떤 할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추루하고 쌩뚱 맞지 않는 할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손자 손녀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가? 등등. 참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나이값이라도 하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천방지축으로 헤매다 기러기 발자국처럼 가슴에 새겨진 상처들. 온데도 간데도 알 수 없는 어지럽기만한 인생의 발자국들을 천천히 정리하고 나이 값을 하려고 합니다. 소슬한 캄보디아의 저녁 바람이 정신을 들게 합니다. 주의 은총이 임하기를…’저의 찐한 기도와 사랑를 보냅니다. 즐거운 쫄치남 되시기를… /정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