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예술 이야기] 제21화 베르디와 리골레토 (Rigoletto), 프랑수아1세와 트리볼레①

기사입력 : 2021년 12월 10일

류기룡 타이틀

베르디와 리골레토 (Rigoletto), 프랑수아1세와 트리볼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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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오페라 아리아가 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고”로 시작되는 테너의 노래로  “La donna e mobile”이다. 이 곡은 교과서에도 작곡가와 소개가 되었고, TV광고에서는 개사를 하여 부르기도 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럼 “여자의 마음”이 등장하는 오페라 리골레토를 먼저 소개를 해 보고자 한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오페라의 주인공은 만토바 공작, 꼽추 리골레토 그리고 그의 딸 질다를 중심으로 하여 펼쳐지는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이야기 이다.

<꼽추로 태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웃음을 파는 것 밖에 없던 어릿광대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의 시중을 들고 있다. 그는 공작에게 부인과 딸을 농락당한 마을의 남편들을 조롱하는 연기를 한다. 하지만 결국의 자신의 딸 질다 역시 공작의 신하들에게 의해 납치가 되고 공작의 농락거리로 전락하는 일이 발생하고 이런 상황을 겪게 되면서 리골레토는 이전에 자신이 조롱하였던 아버지들 중 누군가의 저주로 인하여 이런 일이 생겼다며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또한 그는 공작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자객을 고용한다. 하지만 자신이 고용한 자객의 누이가 난봉꾼인 공작을 불쌍하게 생각하게 된다. 하여 리골레토의 청부를 받은 오빠에게 요청하여 공작을 살려달라고 하게 된다. 이에 자객은 마을의 여관에 처음 들어오는 손님을 죽이고 시체를 자루에 넣어 리골레토에게 보내기로 약속한다. 이때 여관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질다는 자신을 농락한 만토바 공작을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어 자신이 대신 희생하기로 결심하게 되고, 사건은 일어나게 된다. 무대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골레토는 자객이 가져온 자루에 자신의 딸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질다는 아버지 앞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낭만시대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를 이야기하면 도니체니, 푸치니 그리고 베르디 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베르디는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지만 오늘 필자가 이야기 할 “리골레토”는 대표적인 그의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6세기 전반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던 프랑수아 1세와 그의 어릿광대 트리불레를 상기해야 한다.

프랑수아 1세는 다재다능한 왕으로 군사와 정치에서 놀라운 상황들을 연출하며 로마의 교황이나 이근 다른 나라들의 국왕들에게는 상당히 벅찬 상대였다고 한다. 또한 이 왕은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후원자였을 만큼 예술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하지만 이 프랑수아 1세는 이외에도 다른 두 가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니 그것은 여자에 대해 특히 예민한 눈을 가지고 있어 신하들의 부인이나 딸이라도 개의치 않았던 호색한이라는 것과 신교도 즉, 프로테스탄트를 가혹하게 탄압한 왕이라는 점이다. 오페라 리골레토는 프랑수아 1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 발루아 공작의 신분일 때 일었던 일과 매우 흡사하다. 그가 16세일 때 참석한 어느 결혼식에서 그는 법률가와 결혼한 젊은 유부녀를 만나게 되고 오페라 리골레토 2막과 흡사한 일을 현실에서 일으키고 말았다. 물론 극중의 내용과 다른 점들은 안내자가 없었다는 것과 납치장면이 없었다는 것이다.

발루아 공작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트리볼레라는 사람을 궁정의 어릿광대로 고용하게 된다. 이 일은 공작이 유년 시절 대부분을 블루아의 성에서 보냈으며 그때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는 전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트리볼레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300년이 지난 후 두 곳의 나라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제도적으로 어릿광대가 궁전에 존속했다는 사실로 전해 질 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리골레토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또 한 명의 위인을 기억해야만 한다. 바로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그 주인공이다. 어느 날 아버지의 서고에서 책장을 넘기다가 그는 트리볼레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되었다. 프랑수아1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국왕이나 전략가가 아닌 호색가, 난봉가로만 알고 있었다. 트레볼레에 대한 내용을 보고 난 후 7년이 지나 빅토르 위고는 두 사람의 내용을 가지고 희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특이한 점은 그의 희곡에서 두 사람은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것과 몇 몇 학자들은 트리볼레와 프랑수아1세의 이야기에서 “노틀담의 꼽추”의 원작을 유추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이 희곡은 <왕의 환락>이라는 제목으로 1832년11월22일 첫 무대에 올려졌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50년 동안 공연이 금지된 작품이기도 하다.

공연이 금지 당하기 전인1830년 당시에는 공연을 검열하는 기관이 있었고 대신이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었다. 위고는 이 연극은 프랑수아 1세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을 하였으나, 당시 시대적 배경이 “부르주아 왕”이라고 불렸던 루이 필립 시대였으므로 많이 이들이 연극을 관람하게 되면 과거의 국왕과 현재의 국왕을 흡사하다고 생각할까봐라는 우려로 인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결론은 위고의 주장이 이겨 공연을 하게 되었다. 첫 공연이 열리던 날 1층은 위고의 지지자들로 가득 차고, 2층은 반대파들이 좌석을 차지하였다. 공연이 진행이 되면서 1막, 2막, 3막에 걸쳐 아래층과 위층의 관람객들은 대립을 하였고 공연장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또한 허가 나기 전 수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내용으로 인하여 이 공연은 금지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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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룡 교수

경북대, 러시아국립차이코프스키음악원(석·박사)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 교수
성악가, 합창지휘자, 콘서트 프로듀서
NGO활동가로 동남아, 한국, 유럽에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