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 의료 지원을 위해 더 많은 의사 필요Posted 933 days ago
- 태국 국경 개방과 동시에 통행증 신청 쇄도Posted 933 days ago
-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수 제로를 향하여 5월1일 단 2건에 그쳐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베트남 국경 인접 7개주 도로망 건설Posted 934 days ago
- 5월 초 집중호우·홍수경보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베트남 돼지고기 밀수 단속 강화Posted 934 days ago
- 미국, 캄보디아에 코로나19 백신 200만 회분 기부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 2022 경제 성장률 5.4%로 하향 조정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 학교 폭력, 금품 갈취는 기본, 교사 폭행 등 심각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 우기 오기도 전에 폭우로 6명 사망, 재산 피해 수백Posted 934 days ago
[숨은 예술 이야기] 제18화 트바로티 캄보디아
트바로티 캄보디아
뜬금없는 이야기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2대에 걸쳐 문화와 교육이 단절되었던 캄보디아는 길지도 않았던 킬링필드 시대를 거치면서 너무나 많은 문화예술의 소실을 가져왔던 나라이다. 이곳에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때로 가슴속의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을 때 의료와 식량을 지원해 줄 수 있을 만큼 괜찮았던 나라 캄보디아가 한 순간에 몰락했고 이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너무나 많은 고통과 인내 그리고 시간과 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일을 한가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캄보디아를 대표할 수 있는 노래 한 곡을 합창으로 녹음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전문 합창단이 없어 사람을 양성하는데 5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전문녹음실과 오케스트라가 없어 결국은 합창단과 함께 한국행을 택해야만 했었던 일이 있었다. 만약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 있었다면 편곡부터 녹음 그리고 후반부 작업까지 일주일이면 되었을 일이 결론적으로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누구도 이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냥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필자로서는 이 반응이 주는 충격이 상당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분명히 불편한 일이 누군가에게 또 어떤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구나 라고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필자가 김호중이 부르는 노래를 다시 진지하게 듣게 된 계기는 김호중의 The Classic 1집과 2집 앨범을 캄보디아 제자들과 학생들에게 선물하면서였다. 이 일은 김호중의 팬들이 모여있는 한 유투버 채널의 운영자와 회원들의 도움을 통해서였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나마 그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The Classic 앨범을 캄보디아에서 성악가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후원해 주신 아리스 회원님들과 조재천 회장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지면을 빌어 말씀 드리고 싶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목소리와 음악적 해석에서 1800년대 말~1900년대 중반까지의 음반자료에서 들었던 옛 성악가들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당시는 성악가들이 오페라와 가곡뿐만 아니라 클래식 창법을 바탕에 둔 대중적인 노래들을 많이 불렀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신라의 달밤’ 같은 노래가 나왔던 시기와 그 이전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 사람의 음악은 현대적인 색깔을 입힌 예전의 음악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중, 장년층의 숫자도 상당히 많다고 알고 있다.
이렇듯 10년 이상을 이어온 인연이 아닌듯한 하지만 약간의 인연이 있었던 김호중과의 시간을 뒤로하고 지면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때다”라는 것이다. 성악가 김호중의 삶을 기(20대) 승(30대) 전(40대) 결(50대이후)로 표현을 한다면 그는 이제 ‘승’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젊은 음악가는 이제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준비하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인간 김호중의 발자취가 대한민국의 음악계(대중/클래식)에 어떤 기록으로 남을지 우리 누구도 지금은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통 클래식 성악가도 그렇다고 대중가수도 아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이야기 해 보면 상당히 자유로운 음악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가 군복무를 마치고 무대로 돌아오면 다시 노래를 시작하게 되겠지만, 많은 날들이 지난 후에 오늘의 이런 시간들이 어떤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날지 지금의 우리는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인간 김호중을 사랑하고 성악가 김호중을 아낀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끓어지지 않는 응원과 때로는 따끔한 질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 명의 음악가가 무대에서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것이 한 나라의 역사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적용은 국가나 사람의 역사에 동일하게 적용 될 수 있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언젠가는 나타나리라고 믿고 있는 캄보디아의 김호중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연 필자는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영향을 전달하게 될까? 그때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클래식의 감성으로 캄보디아의 전통음악이나 C-pop을 노래하거나 아니면 반대 성향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그런 가수가 언제 짠하고 나타날 수 있을까?
필자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끝으로 한번 더 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음악가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음악 작품과 연주자를 돋보이게 하는 무대도 필요하지만 그 마지막 정점은 바로 훌륭한 관객이 있음으로 해서 완성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말씀 드리고자 한다.
지면에서만 아니라 공연장에서 연주자와 관객으로 만날 날을 꿈꾸며
프놈펜 노래하는 남자들 단원 모집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남자 성인
테너1 : 4명, 바리톤 : 3명, 테너2 : 4명, 베이스 : 3명
연습시간 : 주1회 2시간, 연습장소 : KR ARTS CENTER(tk 에비뉴 근처)
문의전화 089 340 530
류기룡 교수
경북대, 러시아국립차이코프스키음악원(석·박사)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 교수
성악가, 합창지휘자, 콘서트 프로듀서
NGO활동가로 동남아, 한국, 유럽에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