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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한인 선교사 이야기] 제 6 화 한인 선교사 입국 직전의 캄보디아 상황
전술하였듯이, 1979년 1월 7일, 헹삼린 (Heng Samrin) · 체아심 (Chea Sim) · 훈센 (Hun Sen) 등, 소위 캄보디아인 3인방을 앞세워 캄보디아에 들어온 베트남 군대는 ‘깜뿌찌어인민공화국 (PRK: the People’s Republic of Kampuchea)’을 수립 후, 약 10년간 통치하였다. 캄보디아에 주둔하였던 베트남 군대는 대내외적 상황 변화로 인하여 1989년, 캄보디아에서 철군하게 되는데, 그해 4월, 캄보디아 인민혁명당은 기존의 당명을 캄보디아인민당(CPP: Cambodian People’s Party)으로 변경하고, 캄보디아 국명 역시 ‘캄보디아 국 (State of Cambodia)’으로 변경하면서, 사유재산 인정, 민영화 추진 등, 탈 공산화를 추진하였다.
같은 해 10월, 베트남 군대는 소련·동구권의 몰락과 캄보디아 운영의 경제적 부담 그리고 캄보디아 통치에 따른 국제사회의 비난에 따라 캄보디아에서 완전히 철군하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약 4년 동안, 캄보디아에는 봄이 찾아왔고, 1993년 9월, 새로운 헌법 아래, 첫 총선을 치름으로 입헌군주국인 현재의 ‘캄보디아왕국 (Kingdom of Cambodia)’ 수립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 1968년 설립된 캄보디아성서공회(50주년)
캄보디아의 인접 국가 중에서, 태국은 캄보디아 개신교 선교에 상당한 영향과 도움을 주었다. 1923년, 캄보디아에 입국한 첫 개신교 선교사는 비록 미국 C&MA 파송이었지만, 태국 주재 미국성서공회 (American Bible Society)와 영국/국제성서공회 (British & Foreign Bible Society) 등에서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1889년부터 누가복음, 사도행전 등의 쪽 복음을 캄보디아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으며, 1958년, 당시 태국에 주재하던 최찬영 선교사는 23일간,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태국 주재 한인 선교사들은 인근 인도차이나 국가인 라오스,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에 한인 선교사가 입국해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책무에 열린 마음을 가졌다. 1990년, KMC(주태 기독교대한감리회선교부) 신광준 선교사는 베트남에 김00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주선함으로 베트남 한인 선교의 문이 열리도록 도왔으며, 1992년, KPM(주태 한국장로교선교부) 정승회 선교사는 라오스로 파송 받은 김00 선교사를 방콕에서 언어 연수하도록 안내하였고, 1993년, KGAM(한국총회선교회) 강대흥 선교사는 본국 선교본부로부터 인도차이나 조정관(코디네이터)의 직책을 수여 받고,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입국한 같은 교단, 소수의 한인 선교사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은 사회주의권이면서 한인 선교사 입국이 막 시작되는 라오스나 베트남으로는 대단한 보호막이자 발판이었고, 겨우 공산주의 잔재를 벗은 캄보디아에도 가뭄 뒤의 소나기와 같은 역할이었다.
▲ 캄보디아 한인 1호 입국 강창윤/지주옥 선교사
한인 선교사로서, 캄보디아에 가장 먼저 입국한 강창윤/지주옥 선교사 역시, 당시 캄보디아는 한국과 수교 관계가 없었을 뿐 아니라 적성(敵城) 국가로 분류되어 정상적인 입국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92년 12월, 강창윤 선교사 부부는 태국에서 사역 중인 동료 선교사의 도움으로 캄보디아 입국을 위한 초청장을 발급받았는데, 태국에 도착한 강창윤 선교사 부부는 캄보디아 입국을 위해 그 초청장 명의자인 프놈펜 주재 한인에게 일주일 동안 연락하였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결국, 1993년 1월 10일, 프놈펜 가는 국제선 비행기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캄보디아에 도착 후 확인해보니, 그 서류는 초청장이 아니라 예배허가서였는데, 강창윤 선교사 부부는 가까스로 체류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장완익 선교사 (KMAC 선교역사연구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