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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이야기] 제19화 교회 개척 운동과 선교의 확장
21세기에 접어든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교회 개척 운동의 열풍에 들어갔다. 물론 이를 주도한 이들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온 개신교 선교사들이었다.
미국 최대 규모의 남침례교 (Southern Baptist) 선교부 (IMB: International Mission Board)는 이러한 흐름에 가장 먼저 기여하였는데, 데이빗 게리슨 (David Garrison)은 1999년, “교회개척운동 (CPM: Church Planting Movements)”이라는 소책자에 캄보디아 교회 성장 사례를 소개하자 캄보디아 선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었고, 그다음 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빌리그래함 선교대회에서는 캄보디아 교회 개척 사례를 발표하면서, 교회 개척이 가능한 선교 필드로 캄보디아가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데이빗 게리슨은 1989년 12월, 캄보디아 전략 코디로 미국 남침례교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캄보디아에 왔으며, 그는 1991년까지 언어 연수와 함께 캄보디아 복음화 전략을 구상하였다. 이후 그는, 그의 구상을 따라 캄보디아인 평신도를 훈련하여 이들을 교회 개척의 중심으로 서게 하는, 기존의 선교사들이 직접 교회 개척을 하는 방식을 탈피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구상은 실제적으로 캄보디아에 긍정적으로 적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1993년 기준, 6개였던 캄보디아 침례교회는 10개로 증가하였으며, 1년 뒤에는 20개 그리고 1995년에는 43개에 이르렀다. 이를 배경으로 캄보디아 침례교회는 지방회-총회 개념의 KBC(Khmer Baptist Convention)를 결성하였으며, 이는 나중에 CBC(Cambodia Baptist Convention)의 모체가 되었다. 그 이듬해 침례교회는 78개로, 1997년에는 당시 캄보디아117개의 군(District)이 있었는데, 그중 53개 군에 123개의 침례교회가 세워졌다. 1999년에는 200개 침례교회, 10,000명의 침례교인이 있었다. 물론 이 교회 중 건물을 가진 교회는 많지 않은 가정 교회 형태였다.
남침례교 선교부 외에도 감리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AOG 등의 교단선교부 및 Four Square, Pioneers, World Team, Inter-Serve, CRM, Mission To the World 등의 미국 선교단체들 그리고 호주,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에서 입국하는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과 캄보디아인 교인들의 전도 등으로 2001년에는 1,000개 이상의 교회가 캄보디아에 세워졌고, 교인 역시 60,000명을 넘게 되었다. 물론 기존의 C&MA는 KEC를 통해 OMF, World Vision과 각 기독교 NGO들 역시 이러한 교회 개척 운동에 참여하였다.
기독교 NGO와 교육단체들은 기술학교, 학사 등을 통해 캄보디아 선교에 참여하였다. 에릭 둘리(Eric Dooley)는 1993년, 지방에서 프놈펜으로 온 청소년을 대상으로 영어와 컴퓨터 학교를 시작하였으며, 척 맥콜(Chuck McCaul) 선교사는 올림픽 시장 근처에 사무기술훈련학교를 열어 매주 1,000명 이상의 청소년들에게 영어와 직업훈련을 시행하면서 전도함으로, 수백 명이 출석하는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유사한 방법의 학사들이 프놈펜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의 열매로 후에 차세대 목회자들은 여러 분야에서 능력 있고 헌신된 교회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