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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이야기] 제10화 1970년대 초 캄보디아 교회의 부흥
1960년대, 늦은 비로 표현된 캄보디아 교회의 약진은 1970년대, 엄청난 교회 성장으로 이어졌다. 론놀 정부는 캄보디아를 개방하여 기독교 기관과 관련 개인들의 출입이 가능하게 하였으며, 전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과 선교사들이 당시 개방 정책을 기회로 캄보디아를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캄보디아는 이미 준전시 상황이었고, 이 시기 캄보디아 교회와 기독교 선교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드러난 캄보디아의 역경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교회에 대하여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월드비전(World Vision)은 위험을 무릎 쓰고 의약품과 의료 시설을 보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 친불교 성향인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1970년, 싸룬(Sarun), 타욱(Tauoch) 그리고 쏘난(Sonan) 등, 세 명의 캄보디아인은 기독교 문학팀을 세웠으며, 그해 10월 21일, 쏘난은 248권의 단편 서적을 판매하였고, 12월 1일, 싸룬은 10주 동안 49,300권의 소책자를 분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 AFCI 몸 바나바 목사(ICCHI 자문위원)
1972년, 월드비전 총재 스탠리 무니함(Stanly Mooneyham) 박사는 동남아를 여행하는 동안, 캄보디아의 고난을 목도하였으며, 갖고 있던 의약품 전체를 캄보디아 방문 시 사용하였다. 두 번째 캄보디아 방문 시에는 베트남 사이공에서 의료 지원 물자를 가득 담은 트럭을 손수 몰고 프놈펜에 도착하였고, 크메르복음교회(Khmer Evangelical Church, KEC)와 협력하여 복음 증거와 함께 난민을 치료하였다. 이에 크메르복음교회에서는 무니함 박사를 그해 전도 집회의 강사로 초청하였으며, 두 번의 전도 집회를 통해 약 3천 명의 캄보디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그 열매로 오늘날의 몇몇 중요한 교회 지도자들과 재외 캄보디아 교민 지도자들, 피난민 수용소의 교회 지도자들이 세워졌다. 특히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크메르 주술사 한 사람은 이 전도 집회에 공산당원 스파이로 잠입하였다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는데, 그가 바로 지금의 몸바나바(Mam Barnabas)
▲ KEC 용솟 목사(ICCHI 자문위원)
크메르복음교회는 베트남 깜뿌찌어 끄라옴 지역에 어려서부터 불교 교육을 받았던 씨엥앙(Seang Ang) 목사를 보냄으로 700여 명의 크메르인이 회심하였으며, 용솟(Yourng Soth) 목사는 따크마으성경학교 졸업 후, 세렙다(Serepta)교회의 사역자로 일하면서 청년 사역과 복음 전도를 도왔다.
1923년부터 시작된 50년 선교보다 불과 1~2년 사이에 거둔 선교 열매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곧 선교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이자 바로 이어 다가올 민족 대환란에 앞서 구원의 문을 여신 것이다. 북경 체류 시아누크 국왕의 지원을 받는 크메르루주 군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론놀 정부에 강렬하게 대항하였으며, 이러한 반정부 활동은 점점 내전으로 확대되어 갔는데, 많은 캄보디아인은 전쟁과 혼란 속에서 참된 평화를 갈구하였고, 캄보디아 교회와 일부 선교단체들은 그러한 바람에 의료 사역과 문서 사역으로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하나님은 역사와 선교 모두를 주관하시며, 교회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사역해야 할 것이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