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이야기] 제4화 캄보디아에 세워진 첫 교회

기사입력 : 2020년 02월 28일

1923년 1월과 10월, 각각 캄보디아에 입국한 하몬드 선교사 부부와 엘리슨 선교사 부부는 수도인 프놈펜 그리고 제2 도시인 바탐방에 각각 선교 베이스를 두고 사역을 시작하였다. 감사하게도 수년 전부터 이들이 사역했던 베트남 메콩델타(깜푸찌어 끄라옴 지역)의 크메르인 지체들이 이들 입국 후에 캄보디아에 따라 왔으며, 이들은 초기 사역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먼저 정기적인 예배가 시작된 곳은 하몬드 선교사의 선교 베이스인 프놈펜이었다. 이들은 당시 프놈펜에 주재하고 있는 중국인과 베트남인 중에서 베트남인을 대상으로 예배를 시작하였으며, ‘티업(Tiep or Thiep)’이라는 베트남인 형제(베트남 다낭성경학교 재학)가 이를 도왔다. 몇 개월 뒤, 베트남인 5명과 캄보디아인 2명이 첫 세례를 받았는데, 캄보디아인 2명은 ‘헹(Heng)’ 씨 부부로 중국계 캄보디아인이면서, 하몬드 선교사의 언어 교사였다. 이후 이들은 다낭성경학교에서 성경을 공부한 후 캄보디아로 돌아와 사역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났다. 캄보디아인들이 크마에(Khmer)로 드리는 예배는 1927년에 시작되었다.

1925년, 프놈펜에서 성경 번역을 하던 하몬드 선교사는 수년 전, 자신이 사역했던 베트남 메콩델타 지역을 방문하였으며, 특별히 짜우독(Chau Doc) 근처 찌똔(Tri Ton)에 거주하는 크메르인을 대상으로 전도하고 63명에게 세례를 베푼 후, 기도처를 마련하고 돌아왔다.

4편 평신도 교회 지도자▲ 평신도 교회 지도자들

프놈펜에 이어 두 번째로 정기적인 예배가 시작된 곳은 엘리슨 선교사의 선교 베이스가 있었던 바탐방이었으며, 프놈펜 불어학교 출신의 ‘옥솟(Oct Sot)’이라는 청년은 그 첫 열매로 엘리슨 선교사의 통역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1924년에는 정기적으로 예배드리는 이들이 10여 명으로 늘어났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베트남 메콩델타에서 건너온 크메르인이었다.

1925년에는 15명의 캄보디아인과 4명의 베트남인이 세례를 받았으며,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갖는 기도처(전도처)가 두 지역에 세워졌다. 그 두 기도처는 엘리슨 선교사의 바탐방 선교 베이스와 바탐방에서 7~8킬로 떨어진 “돈떼오(Donteo)” 마을이었다. 특별히 돈떼오 기도처는 하스(Has)-로즈(Rose) 부부와 모응(Moeung), 펌(Pum), 보우(Bou) 등으로 시작되었으며, 엘리슨 선교사 부부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작게나마 대나무로 된 예배 처소를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스, 모응, 품 등, 교회 지도자 3인은 수차례 구타를 당하였고, 분란과 반란 음모가 있다는 죄목으로 그 지방 장관의 명령 아래, 몇 달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1925년 말 기준으로, 캄보디아인 교인은 80명, 헌금은 108(현지) 달러였다.

1925년 9월, 엘리슨 선교사의 바탐방 선교 베이스에서 성경학교가 시작되었으며, 이어 바탐방에서 북쪽으로 28킬로 떨어진 한 마을에 “회심의 열병”이 전해졌는데, 캄보디아 교회사에서 유명한 “츠까에 꼰” 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베트남 메콩델타 지역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그리고 깜푸찌어 끄라옴 기독교 공동체에서 새로운 믿음의 삶을 살고자 이주해온 이들이었다. 이 마을에서 6킬로 더 떨어진 “짠두스바” 마을에 사는 쁘락(Prak) 외 여러 명은 40여 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을 짓고, 십일조와 헌금을 하며, 교회 지도자를 지원하였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4편 츠까에 꼰 마을에 세워진 교회▲ 츠까에 꼰 마을에 세워진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