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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이야기] 제3화 캄보디아에 입국한 첫 선교사 두 가족
어떤 나라나 지역에 복음이 처음으로 전해질 때, 주님께서는 누구를 사용하셨는가? 이는 매우 중요한데, 주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기에 그렇다. ‘동방의 은둔국’이라 불리던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님께서 사용한 첫 선교사가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인 것처럼, 캄보디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님께서 사용한 첫 선교사는 하몬드(Arthur L. Hammond), 엘리슨(David. W. Ellison) 선교사이다.
하몬드 선교사는 1896년 8월 13일, 미국 동부의 뉴욕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C&MA에서 설립한 나약성경학교(Nyack Bible College)에 입학하였으며, 공부하던 기간에 평생의 반려자인 에스더 킹(Esther King) 그리고 평생의 사역지인 캄보디아와 만나게 된다.
1921년 10월 29일, 베트남 사이공에 도착하고, 1922년 9월에는 선임인 어윈(E. F. Irwin) 선교사와 함께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하여 다음 해, 캄보디아에 입국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개신교 선교사의 입국을 강하게 거부하던 총독이 본국으로 안식년을 간 사이, 임시 총독으로부터 행운의 허락을 받게 된 것이었다.
약혼자인 에스더 킹은 1922년 12월 28일, 베트남 사이공에 도착하였고, 두 사람은 1923년 1월 4일, 프랑스개신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같은 달 말,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하였다.
평생을 캄보디아 성경 번역에 힘쓴 하몬드 선교사는 1962년 선교 사역에서 은퇴하였고, 1979년 7월 21일, 미국에서 83세의 나이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엘리슨 선교사는 1898년 6월 12일, 미국 동부의 메사추세스주에서 출생하였다. 일곱 살 때, 가족이 영국으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주님을 만났으며, 평생 주님을 위한 사역자가 되기로 헌신하였다. 19세가 되었을 때는 삼촌이 있는 캐나다로 갔는데, 거기에서 C&MA 잡지를 본 후, 선교사로의 소명을 확인하였다.
한편 그의 배우자 뮤리엘(Muriel E. Harrison)은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교직과 간호과정 훈련을 받은 후 나약성경학교에 갔는데, 둘은 그 학교에서 만나 약혼을 하였다. 이어 데이빗 선교사는 1923년 8월, 베트남에 도착했고, 6개월 먼저 베트남에 도착한 뮤리엘과 함께 같은 해 9월 1일, 결혼식을 올렸으며, 같은 해 10월, 캄보디아 바탐방에 도착하였다.
평생을 교회 개척과 신학교 사역에 힘쓴 엘리슨 선교사는 그의 사역 40주년이던 1963년 9월 27일, 선교지를 돌아보던 중, 심장마비로 순직하였다. 그리고 그의 세 자녀는 부모를 이어 캄보디아 선교사로 섬겼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