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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정(情)
애를 키우다 보면 뭔가에 꽂혀 한동안 그 놀이만 무한 반복하려는 시기를 맞곤 한다. 큰 아이는 케이크 촛불을 끄는 맛에 들린 적이 있다. 어린 것이 촛불을 훅 끄고 어리바리 노래를 부르며 재롱떠는 재미에 퇴근길이면 케이크를 사 들고 왔는데 이 노릇이 끝이 안 보였다. 냉동실에 케이크가 쌓이다 보니 차츰 작은 크기로 바꿔 나르다가 결국 초코파이에 이르렀다.
촉촉한 초콜릿 속에 부드러운 비스킷과 쫀득한 마시멜로의 조합, 맛도 모양도 그야말로 미니멀 초코케이크! 참치 통조림으로 아래 단을 쌓고 초코파이 하나에 초 몇 개를 꽂아주면 대만족이었다. 세 식구가 작디작은 초코파이 케이크 앞에 둘러앉아 대단한 파티 흥을 내며 찍었던 사진은 언제 봐도 코믹하다. 자식 비위 맞추며 푼수 떠는 우리 부부를 지켜보시던 시모 눈에 ‘니들도 다 그렇게 키워졌어!’ 싶지 않으셨을까.
우리나라 사람치고 초코파이(Choco Pie)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유명해진 과자다. 1974년 동양제과에서 처음으로 50원짜리 초코파이를 시판한 이후, 1995년 “초코파이 정”(情)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여, 2014년 출시 40주년엔 세계 시장에서 21억 개가 팔렸으니.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를 비롯해 북한 개성공단 야시장까지 석권했다. 이곳 캄보디아 중국계 상점에서도 초코파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 판 초코파이는 ‘정(情)’이 없다. 대신에 ‘인(仁)’이 씌어있다. ‘情’에 민감한 한국인과 달리 중국인은 인간관계에서 ‘仁’을 중요시해 현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한 브랜드 차별화 전략이라고 한다.
‘仁’과 ‘情’의 차이는 뭘까? ‘仁’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질다’로 인간에 대한 선의와 자기 성찰의 의미가 담겨 있다. 중국인들은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혈연관계 외의 사람에게 경계심이 매우 강하다. 서로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계산된 의도로 섣불리 접근하는 방식은 금물인데, 신용을 얻을 수 있는 고도의 전략이 ‘仁’의 정서와 닿아있지 않나 싶다. 외국인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 정서인 ‘情’이란 무엇일까? 미운 정 고운 정이 있듯이 뜻이 맞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 세월을 함께하면서 깊어진 감정으로, 신뢰의 산물이 아닌 교감의 산물이다. 무슨 짓을 해도 믿어보는 수밖에 없는 사이, 애면글면 이어 가는 징그러운 사이, 그래서 삶의 폭풍우를 버티게 해주는 사이. 수술 뒤 깨어나 “초코파이를 먹고 싶다”고 한 귀순 북한군 병사에게 오리온에서 초코파이 평생 무료 구매권을 선물했다.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이들과 고향을 떠나온 사람, 모든 정붙이를 떼고 혈혈단신이 된 사람에 대한 짠한 마음 또한 ‘情’이 아닐까.
불효를 떠올리게 하는 유행가 가락 한 소절에 중년 사나이가 기어이 눈물을 떨구고 마는 세밑이다. 어느 새 다른 세상 사람이 되신 부모님, 훌쩍 커서 멀리 떠나있는 자식들, 한 해를 무사히 건너게 해준 지기와 이웃들, 새삼 情이 복받치는 절기다(오리온에서 내겐 뭐 안 주려나?)./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