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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선물
프놈펜답지 않게 하늘은 낮고 을씨년스럽다. 황토먼지를 쓸어 올리며 벌판 위로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제법 거세다. 마른가지 부대끼는 소리, 전깃줄 우는 소리에 이 열대도시 프놈펜에 눈발이라도 날릴 것만 같다. 눈을 감으면 고국의 겨울풍경이 겹쳐온다. 고국의 지인께서 보내주신 뉴에이지 선율은 그 풍경에 달콤한 애상을 더한다. 음악 또한 멋진 선물임에 분명하다. 잡다한 근심을 재우고 유유자적 은유의 세계로 이끄는 면에서 음악만한 것도 없을 터이니.
캄보디아 사람들은 유난히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주는 선물은 소소한 것들이라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다. 명절음식이나 푸성귀, 건과일 등, 주로 고향 다녀오는 길에 챙겨오는 것들로, 기르던 닭을 안고 온 적도 있었다.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이나 다락같이 높은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선물은 어울리지 않는다. 뇌물이라면 몰라도, 주고도 욕먹을까 고뇌만 안겨줄 뿐이다. 역시 선물이란 마음 한 자락이 닿아있는 사람에게 하는 게 제격이다. 딱 한번 선물을 돌려보낸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을 못 면하고 있다. 언젠가 커다란 개를 실내까지 데리고 들어온 손님이 못마땅해,”비상식량을 늘 휴대하고 다니시나보죠?” 농을 치는 것을 지켜본 한 캄보디아 지인이, 한국인들이 견공을 종종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는 정보를 들었는지 며칠 후 개의 넓적다리 한쪽을 포장해 보내왔다. 핏기가 채 가시지 않은 거무죽죽한 고깃덩어리를 대했을 때의 그 섬뜩함이란. 놀란 나머지 어떤 변명을 둘러대어 돌려보냈는지 기억조차 없지만, 나중에야 이방인의 입맛에 맞추느라 세심한 배려 끝에 모험(?)을 했겠구나싶어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물을 흔연스레 받는 것도 미덕이지 싶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선물을 기꺼이 받을 줄 아는 사람은 선물을 자주 해본 사람이다.피천득 선생님이 피력하신 것처럼 선물은 받는 즐거움보다 주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소박한 선물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고마움이 있다. 마음이 담긴 도움을 받았을 때다. 신세진 일이 갚아야 할 빚이라도 되는 양 의례적으로 사례하기엔 그 정성이 빛바래지 않을까 싶은 경우가 있는 것이다. 나는 선물을 빼앗듯이 낚아채는 버릇이 있어 구박을 받곤 한다. 눈에 광채가 돌고 입이 함박만 해져서 선물을 펼쳐보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 그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나순 (건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