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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아는 병(炳)
새벽녘 한차례 열대 스콜이 쏟아지고 나면 짝짓기를 위한 개구리 구애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도시 소음을 삼켜버릴 정도다. 냉대의 알래스카는 청어 산란철이 되면 청어 떼가 쏟아놓은 정액으로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안의 바다색이 우유를 풀어놓은 듯 온통 희뿌옇게 된다고 한다. 신(神)이 너무 게으른 게 아닌가싶다가도 이렇듯 만물의 극성스런 생명력 앞에서는 저절로 경외감이 느껴진다.
인간이라고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남성은 한 차례 사정으로 2억~ 3억 마리의 정자를 내보내고, 여성은 타고난 200만개 난모세포를 매월 달거리를 통해 35년에 걸쳐 내보낸다. 이런 생리적 차이 때문인지 남자들은 세상일이 언제나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처럼 받아들이는 반면, 여자들은 매달 치르는 행사처럼 달이 차면 이울고 이울면 차는 이치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대다수 문명의 기원에는 남성 숭배와 여성 숭배가 있다. 문명의 역사란 두 성징의 충동이 융합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고난 성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는 순간, 일테면 이성을 그저 생리적 욕구나 채우려는 대상으로 치부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존재의 신비에 대해 서로 경탄하는 관계로 남을 수 없게 될 터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생리현상에 누구나 당황하게 마련이다. 출혈이 멈추지 않는 초경만큼 섬뜩한 경험이 있을까. 우리 때만 해도 중학교 가정 시간에 천을 끊어다 생리대를 만드는 실습을 했으니, 요즘처럼 편리한 일회용 생리대가 보급된 건 생각보다 근래의 일이다. 불과 50년 전까지 헝겊을 연신 갈아대는 처리가 고작이라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뒤란에 널린 기저귀에 대한 묘사로 ‘그 애가 이제 여자가 됐구나!’하는 암시를 주는 게 옛 문학작품의 클리셰였다. 아이와 처녀의 기저귀가 한 빨랫줄에 휘날리는 대목에선 ‘아녀자’라는 단어가 달리 이해되기도 했다. ‘통제할 수 없는 배설’에 대한 대책이 원시적이었던 구시대에 정상 활동이 어려운 아이와 여자를 비슷한 처지로 보지 않았나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지만 당시 상황을 감안할 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일면 느껴졌다고 할까. 여성에게 월경은 ‘아는 병(病)’이다. 폐경을 달리 일컫는 ‘완경(完經)’또한 병의 완치(完治)개념을 내포하지 않나 싶다.
여성이 남성과 다른 점은 여성은 월경, 수태, 출산을 통해 자신의 몸을 나누어 다른 몸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공동체 일원을 생산해내는 여체 기능은 여성이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는 데 오랜 세월 걸림돌이 돼왔다. 최근 생리대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유해성은 물론 저소득층에겐 아직도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캄보디아 빈곤층 처지는 더 딱하다. 생리혈을 나뭇잎 따위로 처리하는 지경이라 여학생들이 등교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자연의 섭리가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현대여성은 보호보다 같은 출발선에 서길 희망한다. 생리대의 공공재화는 너무 당연한 조치가 아닐까./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