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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와상술(臥床術)’
기상 전 침대에서 뭉그적거릴 때만큼 오로지 자신의 소유로 느껴지는 시간이 있을까. 사찰의 경 읽는 소리와 함께 잠을 깼다. 조상은 물론 무릇 죽은 이들을 기리는 캄보디아 명절 프춤번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새삼 일상의 아침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침대에서 맞겠구나 싶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이란 다름 아닌 침대’라는 우스개도 있듯이, 전체 인구의 80%가 침대에서 죽음을 맞는다. 침대의 용도는 다양하다. 어디 죽음뿐인가, 인간사의 중대한 일들 대부분은 침대에서 이루어진다. 침대에서 태어나 매일 침대에서 잠이 들고 지치거나 아플 때도 침대를 찾는다. 우리 모두 애면글면해마지 않는 연애의 궁극적인 목적 또한 함께 침대에 들기 위해서 아니던가.
침대는 누워 쉬는 용도 외에 여러 가지로 쓰였다. 비스듬히 누워 파티를 즐기는 게 로마시대극의 단골 장면이듯 고대 그리스 로마인에게 침대는 식사나 독서는 물론 사교생활의 중심역할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개구쟁이들에겐 더 없는 놀이터가 돼주기도 한다. 탄성 좋은 용수철에다 푹신한 이불까지 텀블링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돌침대가 막 유행하던 시절 바닥이 돌인 줄 모르고 실컷 뛰었다가 나가떨어지던 모습이라니.
몸을 의탁하는 가구 중 침대만큼 편한 게 있을까. 설계쟁이들이 자주 들춰보는 <건축설계 자료집성>에는 인체의 생활치수들이 순차적으로 도표화 돼 있다. ‘작업자세’에서 ‘가벼운 휴식’과 ‘휴식자세’를 거쳐 최종적으로 반듯이 눕는 ‘상와자세’까지. 의자의 안락감 정도는 등받이 기울기와 다리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등받이 기울기가 클수록 다리 높이가 낮을수록 편하다.
강의실 의자와 달리 해변의 비치 의자처럼 엉덩이 높이와 다리 높이가 평행에 가까워질수록 편안해져 180도에 이르면 심신의 긴장이 최고조로 이완되는 상태인 침대가 되는 것이다. ‘와상술(臥床術)’을 잘 익혀 놓으면 정신 정화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업가가 하루 1시간만 눈을 뜬 채 침대에 누워있는 습관을 들이면 자신의 재산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다.’ 중국 문명비평가 임어당이 자신의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한 말이다. 사업상의 기발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위대한 영향을 미친 과학적 ·
철학적 발견의 90%는 실제 과학자나 철학자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누워있던 새벽녘에 이루어졌으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모든 인류의 사상이 고대 로마에서 비롯된 것도 그들이 침대에 누워 먹고 마시며 토론했던 관습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새벽녘 침상에서는 명상가가 된다. 아무리 지치고 나가떨어질 것 같아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얼마간 초연해져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죽은 이들을 달래는 여명의 염불소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고비마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마음의 면역을 키웠던 비결들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무덤까지 지니고 갔을까. / 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