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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관음증
어둠에 싸여 있을 땐 누구나 놀라운 관찰자가 된다. 사뭇 오래전, 야근하느라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잠시 어둠속에 앉아있는데 바로 앞 오피스에 불이 켜지면서 창문이 극장 스크린처럼 환해졌다. 중년 남녀가 문을 밀고 들어서더니 극이 다른 자석이 들러붙듯 순식간에 엉켜 난폭하게 입술을 부벼댔다. 침 삼키는 소리가 동굴에 바위덩이 떨어지듯 크게 들려 돌아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남성 동료들이 눈을 빛내며 서있었다. 식후 당구 한 게임이 유일한 낙인데 그날따라 당구장이 영업을 안했던 모양이다. 평소 점잖던 분마저 결코 훼방을 용납지 않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이라 난감하던 차에 남녀가 돌연 뚝 떨어졌다. 인기척이 들렸는지 곧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이닥치면서 스릴 넘치던 엿보기도 끝났다.
우연한 엿보기의 도를 넘어 도둑촬영 범죄가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 2mm 초소형 렌즈의 발전과 함께 몰래카메라 범죄가 10년 새 10배 이상 급증했다. 공무원, 전문직, 종교계, 법조계 등 고위 직종의 몰카범죄가 가장 높은 비율로 증가하는 추세다. 관음증의 대상이 여성의 육체이다 보니 화장실, 탈의장 같은 개인적인 장소에서 여체 도촬이 극성이다. 카메라의 위장술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안경이나 모자, 라이터, 펜, 보온병, 옷걸이 등 흔히 지니는 제품은 물론 최근 들어 무인비행기 드론까지 염탐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구두를 유리알처럼 광낸 제비가 카바레를 드나들며 구두에 비친 모습으로 유부녀들 팬티색깔을 알아맞혔다는 왕년의 우스개가 있는데 몰래카메라의 원조격이 아닐까싶다. 구두코 위장 카메라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으니(이미 나왔을 수도), 이제 하늘뿐만 아니라 발밑까지 어느 곳 하나 방심할 수 없는 시대가 온 듯하다. 양질의 성애 콘텐츠가 도처에 넘쳐나는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몰카에 몰입하는 이유가 뭘까? 도착적 관음증은 ‘훔쳐’보는 행위 자체에서 성적 흥분을 얻기 때문이다. 대가를 지불하거나 무료인 경우 일테면, 스릴이 없는 경우엔 흥분이 안 돼서 병이다.
“아래로 굽은 듯 내리뻗은 등뼈, 검은 천에 싸인 작고 탄탄하게 솟은 엉덩이, 쭉 뻗은 넓적다리… 내가 미친 듯이 소유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창조해 낸 것이었다.” 나보코프 <롤리타>의 한 대목이다. 책읽기 또한 일종의 엿보기다. 영화감상은 합법적, 집단적으로 관음증을 즐기는 행위다. 독서는 지면의 활자를 통해 영화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훔쳐보기의 은밀한 욕망을 충족시킨다. 인간의 리비도에 대한 관음주의 탐닉은 본능에 가깝다. 모든 장르가 한통속으로 어우러져 관음증과 익명성이 극대화 되는 곳이 다름 아닌 현대의 인터넷공간이다. 자칫 단속을 방치했다가는 소외된 불특정다수가 언제 사이버 스토커와 범죄자로 돌변할지 모른다. “테크놀로지의 진보로 더 이상 어떠한 환상효과도 갖지 않는 세계는 완전히 외설스럽고 물질적이고 적나라하게 될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말이다. 극사실 외설정보의 폭발시대, 우리의 마지막 불행은 에로스에 대해 일말의 신비마저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