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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캄보디아의 풍경화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중앙시장(센트럴마켓)을 둘러보았다. 활기 넘치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볼 겸, 캄보디아 정취가 나는 기념품을 고를 겸 해서 들른 코스였다. 일행 중 한 분이 그림을 유독 좋아해서 그림을 파는 가게마다 발길을 멈추고 거기에 나와 있는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어느 가게나 거의 비슷비슷한 그림을 벽에 걸거나 매대 위에 펼쳐 놓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앙코르와트 같은 유적이나 압사라 무희 등을 그린 그림이 좀 있었지만 캄보디아의 시골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 유독 많았다.
너른 들판에 여기저기 트나웃 나무가 날씬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고 목재나 초목으로 지은 몇 채의 주택 언저리로 소를 몰고 가는 풍경화, 들판에서 모내기나 추수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이나 호숫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그림을 사 가는 고객 중에는 외국 관광객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캄보디아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그림의 소재가 천편일률적이고 기법이 좀 조악하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그림들이 그들의 정서에 가장 잘 맞아서 그럴 것이다.
캄보디아 사람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항상 끼고 살다시피 하는 페이스북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넓고 푸른 들판에 원근을 그리며 듬성듬성 서 있는 트나웃 나무들,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와 우마차, 무리를 지어 모내기를 하거나 추수를 하는 사람들, 연꽃으로 뒤덮인 늪지대와 연꽃을 따는 소녀, 소를 끌고 가는 아낙네와 소의 등에 올라탄 개구쟁이,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멱을 감는 아이들, 흙투성이 벌거숭이로 흙장난에 빠져 있는 꼬맹이들……사진 속에 등장하는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영상이다. 이런 풍경을 캄보디아 사람들은 좋아한다.
캄보디아는 농업 국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봉제와 관광, 농업 이 3개 분야가 산업의 핵심축이다. 2차 산업 비중이 매우 낮고 제조업의 발전 속도는 극히 미미하다. 최근에 서비스 업종 종사자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농업 종사자가 많은 나라가 캄보디아다. 인구의 70% 내외가 여전히 농촌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모 형제 일가친척이 고향에서 농사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명절이 되면 프놈펜 시내가 텅 빌 정도로 한산해지고 시골로 향하는 국도 곳곳이 교통체증을 빚는다. 너도나도 고향을 찾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족 사이의 유대가 끈끈하고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농경 사회의 유구한 전통이 그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오랜 건기가 지나고 우기가 돌아왔다. 예년에 비해 일찍 찾아온 우기로 인해서 들판이 녹색으로 덮여가고 추레하던 초목들이 생기를 찾았다. 들판으로 나가는 농민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논갈이를 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조금 있으면 물이 차는 논부터 모내기가 시작되고, 온 천지에 그림이나 사진에서 보는 캄보디아의 익숙한 장면들이 연출될 것이다. 그림이나 사진 속에서 산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끝없는 들판 위에 나무와 집, 사람과 소가 등장하는 것이 캄보디아의 풍경화다. 그 속에서 캄보디아 사람들은 고향을 생각하고 가족을 그리고 추억을 떠올린다. 한국에서 거실에 걸려 있는 운보 김기창의 청록 산수를 보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던 내 심정이나 이들의 심정이나 다를 게 없으니 ‘인지상정’이란 말이 딱 어울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