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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캄보디아와 발렌타인데이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인데 선물 없어요?”
“어,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예요?”
골프장에서 캐디 아가씨가 장난삼아 건넨 말을 듣고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인 줄 알았다. 직원과 학생들 얼굴이 떠올라서 골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국 마트에 들렀다. 초콜릿이 없어서 초코파이 몇 상자를 사서 돌렸더니 여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해서 대충 발렌타인데이를 넘겼지만 여직원들은 좀 섭섭한 눈치였다. 작년에는 여직원과 선생님들에게 꽃 한 송이와 초콜릿 선물을 주어서 환심을 샀었는데 올해는 그만 날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 해의 여러 기념일 중에서 발렌타인데이는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신나게 보내는 축제일이다. 이 날이 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거리 곳곳에 일일 꽃장수들이 나타나 장마당을 펼친다. 장미를 비롯해서 갖가지 꽃을 늘어놓고 손님을 부른다. 또 슈퍼마켓이나 마트마다 여러 종류의 초콜릿 선물 세트와 꽃을 준비해 놓고 손님을 맞는다. 꽃과 초콜릿은 발렌타인데이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친구와 연인들이 만나서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발렌타인데이 선물을 주고받는 가정과 직장도 꽤 많다. 저녁이 되면 평소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인파로 붐빈다. 일부 식당과 패스트푸드점, 카페와 술집 등은 이 날이 대목이다. 끼리끼리 모여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신나게 논다. 시내는 밤늦게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발렌타인데이는 14세기 서구에서 유래된 기념일로 기독교 전통과 연관이 깊다. 제과업체의 상술이 더해져 본래의 의미에서 변질되어 번성하게 된 기념일이라는 설도 있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 선물을 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알려져 있고,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을 주는 기념일은 발렌타인데이 한 달 후에 있는 화이트데이다. 그렇지만 캄보디아의 발렌타인데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을 주고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알려져 있어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연인이 있건 없건 이 날이 되면 특히 젊은 여자들은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연인끼리는 물론 친구나 가족들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이 날을 즐겁게 보낸다.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발렌타인데이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날이다.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발렌타인데이 저녁이 되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곳에서 콘돔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이 흔히 눈에 띄었었다. 또, 게스트하우스와 모텔이 손님으로 붐비고 이 날 하루만큼은 방값을 올려 받는 곳도 많았었다. 정부가 바가지요금을 단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풍경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대신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대가 즐기는 기념일로 확장된 듯하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니 발렌타인데이에 관한 사진과 글이 가득했다. 내가 아는 한 학생은 발렌타인데이 장식으로 멋지게 꾸며진 식당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캄보디아 사람들만큼 즐길 것을 다 찾아 즐기며 사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자기 고유의 명절은 물론이고 생일이나 결혼식 같은 행사를 성대한 축제로 즐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의 설이나 추석, 크리스마스 같은 외국인들의 기념일도 발렌타인데이와 마찬가지로 놀고 즐기는 기회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