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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헌 옷, 새 옷
아내는 남편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을 하고, 남편은 아내를 예쁘게 보려고 술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취향에 따라 후해지는 분야가 다른 걸 보면 저마다 가치기준이 다른 듯하다. 멋쟁이는 화장품값이 아깝지 않은 반면 술꾼은 술값이 아깝지 않은 식이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 감정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누구를 더 애정해마지 않나 순위는 그 사람에게 들이는 비용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순일 테니까. 마음이라는 변수가 있겠지만, 그건 어차피 계량하기 힘든 노릇이고.
60년대 우리 자라던 때는 물자가 귀해 너나없이 궁핍하게 살았다. 가뜩이나 넷째 딸로 태어나 언니들 옷을 내내 물려 입어야 했다. 후줄근하고 우중충한 때깔이 어찌나 싫던지. 그래서일까, 웬만한 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는 알뜰파지만 옷만큼은 새 것을 좋아한다. 구호물자로 연명하던 6.25전쟁 후에도 여인들의 한복사치가 극성맞았는데 벼르고 별러 장만한 새치마가 닳을까봐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 내복을 거침없이 내보이며 엉덩이를 까고 앉았다는 기록이 있다. 르네상스시대 유럽에서는 회색과 베이지색은 가난을 의미하는 색으로 하층농민이나 청빈을 맹세한 수녀, 수도사가 주로 입었고, 빛바랠 새 없이 염색된 밝고 강렬한 색깔 옷이 부의 상징이었다. 요즘은 일부러 오래된 것처럼 연출하는 빈티지 패션까지 등장했지만, 새 옷 선호 취향은 동서고금의 인지상정일 듯싶다.
몇 년 전만해도 공사현장을 어슬렁거리다보면 인부들이 벗어던지고 간 옷가지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개중에 투명인간이라도 담긴 듯 인체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옷도 있었다. 호기심이 동해 캄보디아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막노동판에는 거처조차 없어 한뎃잠을 자는 부류가 끼어있게 마련이라, 어찌어찌 얻어 입은 옷 한 벌로 노숙생활을 하다가, 차츰 땀과 오물에 절어 천이 빳빳해지면 행동하기가 거북해져 벗어 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패션차원의 의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최소한의 피부 보호막 차원이라고 할까.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일테면 어느 시구에 나오는 뱀의 허물 같은 거였다.
그간에 캄보디아 건설현장도 많이 달라졌다. 주리고 헐벗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근무 중에 스마트폰질 하는 것을 잔소리해야 할 정도가 됐다. 어디 스마트폰뿐인가, 오토바이는 물론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까지 구비하는데 열을 올리는 추세다. 그만큼 형편이 나아져 이제 시골구석이나 빈민구제소가 아니고는 헌옷 기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에 다양한 취향이 있듯이, 다양한 입장이 있다. 취향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지만 입장이란 처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데, 취향이든 입장이든 타인의 상황을 헤아리기란 힘든 일이다. 굳이 남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도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드문 것이다. 이젠 캄보디아라고 헌 의류를 막무가내 기부하는 게 능사가 아닐 듯싶다. ‘무슨 이따위를…’, 사람에 따라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