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물이 귀한 나라

기사입력 : 2016년 11월 04일

아침마다 집 안팎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준다. 요즘은 우기라서 하루나 이틀에 한번 정도 비가 오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금방 땅이 말라 버리기 때문에 꽃이나 나무에 때때로 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햇볕이 강하고 습도가 높지 않아서 그런지 비가 내리고 몇 시간만 지나면 땅바닥은 금방 뽀송뽀송해진다. 그래서 포장이 안 된 프놈펜 시내 이면 도로 곳곳은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먼지로 뽀얗다.

연간 강수량이 1000mm가 넘고 지역에 따라서는 2000mm가 넘는 곳도 있지만 늘 물이 부족한 나라가 캄보디아다. 물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놈펜 시내 곳곳에는 호수나 늪지대가 펼쳐져 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그곳으로 모여 서서히 낮은 곳으로 빠져 나가다가 건기가 되면 거의 바닥을 드러낸다. 호수나 늪지가 단지 유수지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상수도의 혜택을 누리는 프놈펜이야 물 걱정을 별로 안 하지만 도시 지역을 벗어난 곳에 사는 캄보디아 사람 대부분은 늘 물 부족에 시달린다. 요즘 같은 우기에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몇 달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가 되면 물은 더욱 귀해진다.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집집마다 커다란 항아리가 몇 개씩 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기에 빗물을 받아 보관하는 가정 필수품이다. 거기에 물을 저장했다가 식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몇 달 동안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기 몇 달을 그것으로 버텨야 한다니 물이 얼마나 귀한지 짐작이 간다. 식수는 그것으로 버틴다고 하더라도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에 몸은 어떻게 씻고 빨래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자선 단체와 뜻있는 사람들이 우물 파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나마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런데, 우물을 파 주어도 사용을 꺼리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지질 특성상 지하수에 인체에 해로운 석회질과 중금속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식수로 쓰려면 땅 속 깊은 데까지 관정을 뚫거나 강물을 정수해서 상수원을 확보해 주어야 하는데 워낙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 아직은 요원하다. 산악 지역이 별로 없어서 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하기도 어렵고, 우기에만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기 때문에 강수량이 많아도 대부분 바다로 흘려보내고 만다. 동양에서 가장 큰 호수가 있고 메콩강 하류의 거대한 물줄기가 국토를 관통하고 있는 나라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휴일에 왕궁 근처 강변에 나가 보았다. 톤레삽강의 수위가 강둑 아래 5m 정도까지 차올라 있었다. 건기에 무성하게 자랐던 풀밭이 모두 물속에 잠겼다. 건기보다 수면이 10m 정도 높아진 것 같다. 우기가 한두 주 더 남았으니 강물은 더 불어날 것이다. 그것이 강변 바로 턱 밑까지 차오르게 되면 비가 뚝 그치고 건기로 들어서게 된다. 메콩강 수위가 3,4m만 더 올라오면 프놈펜 시내 대부분이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데, 과거 수백 년 동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하니 자연의 섭리는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변 여기저기에 낚시꾼들이 앉아 있다. 강둑에 앉아 아무리 기다려도 피라미 새끼 한 마리 걸리는 기색이 없는데 모두들 느긋하다. 강 건너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쪽배들도 보이지 않는다. 식구들을 싣고 어딘가 안락한 곳으로 이사를 간 모양이다. 우기가 지나고 물축제가 끝나 강둑이 훤히 드러날 때쯤에는 다시 그 자리로 모여들어 수상 마을을 이루게 될 것이다. 서쪽 편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니 곧 비가 내릴 모양이다. 아직은 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