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 의료 지원을 위해 더 많은 의사 필요Posted 933 days ago
- 태국 국경 개방과 동시에 통행증 신청 쇄도Posted 933 days ago
-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수 제로를 향하여 5월1일 단 2건에 그쳐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베트남 국경 인접 7개주 도로망 건설Posted 934 days ago
- 5월 초 집중호우·홍수경보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베트남 돼지고기 밀수 단속 강화Posted 934 days ago
- 미국, 캄보디아에 코로나19 백신 200만 회분 기부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 2022 경제 성장률 5.4%로 하향 조정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 학교 폭력, 금품 갈취는 기본, 교사 폭행 등 심각Posted 934 days ago
- 캄보디아, 우기 오기도 전에 폭우로 6명 사망, 재산 피해 수백Posted 934 days ago
[나순 칼럼] 새해엔…
새 차를 뽑고, 집을 새로 짓고, 건축사시험에 합격하고, 첫딸을 출산하고. 약관을 훌쩍 넘긴 딸아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일이지만 모두 같은 해에 맞았던 행운이다. 차나 집이나 소박한 것이었지만 건설시장이 여지가 있던 때로 그 해 송년회 자리에선 좌중의 부러움을 샀다. 행운도 불운도 삼삼오오 몰려다니게 마련인지, 작년에는(벌써!) 뜻밖의 병고를 치르고 한숨 돌리던 즈음에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더니 석 달이 채 안 돼 어머니마저 그 뒤를 이으셨다. 부모는 자식의 거푸집이라던가, 나란 존재의 원형을 차가운 겨울 땅에 묻고 12월 마지막 날 캄보디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리안 향이 밴 듯 구릿한 열기하며, 까랑까랑한 크메르 말씨하며, 프놈펜은 여전했다.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새해를 맞았는데 지독한 액년(厄年)을 통과해 온 듯 심신이 녹초가 되었다.
이문구 작가 자전소설 <관촌수필>의‘일락서원’ 편에서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윤영감)를 회상하고 있다. 고령에 이른 할아버지는 내로라하는 지관들을 수소문해 일찌감치 집 근처 칠성바위에 자신의 헛묘(빈무덤)를 정한다. 무료한 날이면 장차 자기가 묻힐 유택을 정성스레 돌보는 것으로 소일하며 그윽한 눈길로 내려다보곤 한다. 장성한 작가가 조부의 가묘(假墓)자리를 찾아 옛날 그 칠성바위 위에 앉자, 주변 자연이 주는 정감과 달리 할아버지의 영원불변한 정기가 느껴진다. 연고 없는 사람의 죽음이야 생물학적인 수명이 다한 것이려니 무심히 지나치지만, 선대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각별하기 마련이니. 돌아가신 부모님이 피안(披岸)에서 다시 만날 것만 같고 차안(此岸)에 남겨진 살붙이를 잊지 못하고 지켜 주실 것만 같은 게, 조상숭배의 유교사상이 그런 연유로 비롯된 모양이다. 윤영감처럼 머지않아 죽을 거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행위가 현재 한순간 한순간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들기도 할 테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모님 돌아가시는 일을 당하고 보니 죽음이 성찰의 대상이 아닌 염세, 패배, 공포 따위로 다가온다. 어쩔 수 없는 소인배인지라 그런 생각들에서 멀리 달아나고 싶은 것이다.
그럭저럭 나이를 먹다보면 완벽한 행복이란 없다는 사실을, 정반대로 완벽한 불행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 잘못 없이도 늙고 병드는 형벌이 주어지는 것과 같이 슬픈 일은 저절로 오지만 즐거운 일은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는 사실 또한. 행운이 겹쳤던 그해 일만해도 그렇다. 특별함을 만드는 건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듯, 다 사람 소관인 것이다. 새 차를 뽑았을 땐 1년 정도, 집을 새로 짓고는 2년 남짓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국가면허를 따고 자녀를 갖은 일은 평생을 두고 적지 않은 기쁨을 주었다. 차와 집을 장만하는 데는 큰돈이 필요하니 그렇다 치고, 뭔가를 배우거나 아이를 만드는 일은 별 비용 들이지 않고도 가능한 거 아닌가. 어쨌거나 영문도 모른 채 이 지리멸렬한 세상에 던져진 입장으로서 단단히 복수하는 길이란 심장이 쿵쿵 뛰도록 신바람 나게 사는 게 아닐까. 새해엔 더욱 그렇게.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