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고] 고구마를 먹으며

기사입력 : 2016년 01월 11일

어린 시절 전라도 섬에서 살면서 고구마를 많이 먹었습니다.쪄도 먹고 구워도 먹고 때로는 잘라 말린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많이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특히 엄마들은 술을담가 먹었습니다. 그 술이 달콘해서 저도 주는대로 받아 먹다가 헤롱헤롱한 기억도 있습니다. 또 어린 제가 무슨 일인지 술 마시고 잠시 춤추고 노는 아줌마
들에게 엄마한테 술 먹이지 말라고 소리 소리 지르던 기억도 있습니다.
가끔 지방에 갑니다.

그러면 가난해서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찐 고구마를 대접합니다.우리네 것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아주 맛있습니다. 그 때마다 나는 추억을 먹고, 고구마를 대접하는 수줍은 마음을 먹고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인정
에 가슴이 아립니다.

그들은 참으로 무소유의 삶을 살지요.아무 것도 없는,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는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가 주어지면 부담스러워 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일어나서 밥먹고, 들에 나가 일하고돌아와서 밥해 먹고 자는 그러다가 무슨 권투경기라도 있으면 둘러 앉아 티브이를 보는… 도무지 재미가 하나도 없을 듯한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추루한 삶, 주름져 굴곡진 눈가로 보이는 아득한 눈동자. 그들의 삶을 말해주 는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참 느긋하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고구마를 먹으며, 그 노란 속살을 파먹으며, 나의 삶이 고구마의 추루한 겉 모습과는 다른 속이 먹음직한 것으로 채워져 다른 모든 것들에게 유익이 되기를 생각해 봅니다.

요즘은 버리는 연습을 합니다.그런데 참 그게 안되네요? 세상의 것을 버려야만 하늘의 것이 보인다는 말은
진짜 맞지요? 하늘의 것을 추구하고 사는 삶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면 말이 안되죠?뭐 하늘의 것이란게 뭐 다른 것이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하늘의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그런 것을 의미하겠죠.고구마를 같이 까먹으며, 서툴은 캄보디아 말로 주절거리는 나는이미 반 정도는 캄보디아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소박한 그 사람들이 좋고,
부드러운 고구마의 속살이 좋고 또 그들에게 배워가는 욕심없는 삶이 좋습니다. / 정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