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발암물질

기사입력 : 2015년 12월 03일

공자는 이혼남이었다. 공자 쪽 잘못인지 그의 아내 쪽 잘못인지 모르지만 수신(修身) 다음으로 제가(齊家)를 꼽으며 가정의 화목을 중시했던 공자인지라 조금은 의외다. 이혼사유 또한 세계 3대 성인이라는 칭호가 무색하다. 요리솜씨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 공자는 소문난 미식가로, ‘쌀은 눈처럼 희어야 하고 고기는 아주 잘게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기에 양념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지, 고기를 반듯하게 썰지 않았던지, 고기색이 좋지 않으면 처다 보지도 않았다. 부인이 이 까다로운 남자에게 질려서 도망갔다는 얘기도 있다. 그 시대에 ‘소시지’가 존재했다면 소박을 면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더 이상 다질 수 없을 만큼 잘게 다져진 고기에 갖은 향신료와 양념, 먹음직스런 빛깔, 정연한 모양…

소시지(sausage)는 라틴어의 ‘salsus’(소금에 절인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다. 골, 코, 귀, 혀, 염통, 콩팥, 창자 등을 잘게 다져 피와 함께 양념한 후 돼지 창자나 양 창자에 채워 훈제한 것으로, 원래는 질 좋은 고기를 먹기 힘들었던 서민을 위한 먹거리였다. 로마제국의 소시지가 북유럽으로 전해졌는데 독일에서는 ‘소울 푸드’라 칭송할 정도로 사랑받았다. 훈제하는 대신 삶아내는 우리 한국 순대와 비슷하다. 이곳 캄보디아에도 소고기 간 것에 땅콩과 허브, 소금으로 양념해 돈창에 넣어 만든 ‘쌋 끄럭 꼬’라는 음식을 흔히 볼 수 있다. 소시지와 유사한 식품을 어느 문화권에서나 즐긴다는 증거이리라.

지구촌 시대가 된 후 뉴스를 보면 우울하다. 비극이 전 세계로 확산될 듯한 공포분위기 때문이다. 사스, 에볼라, 메르스 같은 전염병 창궐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번엔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 IARC가 가공육이 1군 발암물질이라고 발표했다. 육류애호가와 가공식품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적당히’ 먹으면 괜찮다며 한 발 물러섰다. 여론이 과학의 한 변수임을 인정한 셈이다. 소시지, 햄, 베이컨이 직장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보고에 부대찌개를 즐겨먹는 직장인들 입에서 직장암 발생 주범은 못된 상사나 악덕 사주라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분류기준인 1, 2A, 2B, 3, 4군 순은 위험성에 따른 게 아니라 밝혀진 학술자료량 순이라고 한다. 일테면 암 유발 증거가 많은 순이다. 1군에 담배와 술을 비롯해 햇빛과 오염된 공기까지 포함되어 있다. 암 발병의 확실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암 병동엔 천사들로 가득하다고한다. ‘나 하나 참으면 두루 편한데.’ 꾹꾹 참고 살다가, 스트레스덩어리가 암으로 발전했다던가.

‘발암’물질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바람’물질이란 것도 있을 법하다. 언젠가 치정사건에서 대한민국 사법부가 ‘바람’에 대해 정의한 적이 있다. 육체적 정분뿐 아니라, ‘한 사람에게 쏠리는 마음’ 또한 바람이라는 것이다. 1급 바람물질은 다름 아닌 남자사람, 여자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대책이 있는가. 발암물질도 그 비슷한 게 아닐까./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