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다이어트

기사입력 : 2015년 09월 18일

외간여자의 실크 슬립 내리는 소리, 온더록스 잔의 얼음 부딪치는 소리, 튀김옷에 기름이 스미며 바삭하게 튀겨지는 소리… 색정, 과음, 폭식…, 쾌락을 주는 것들은 대체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은 ‘세계적 전염병’이라고 규정했듯이 특히 음식에 대한 탐닉은 한이 없다.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동남아까지 비만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기아걱정을 하던 캄보디아만 해도 과체중인구가 몇 년 사이 15%로 증가해 비만걱정을 하게 되었으니. 쾌락엔 응분의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라, 21세기는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 세계가 체중감량을 위해 한 해 들이는 비용이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의 3배와 맞먹는 1400조원에 달한다. 지구촌 전체 결식아동의 배를 채워주고도 남음직한 금액이다. 이처럼 우리는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족속이다.

예로부터 다이어트는 주로 여성의 관심사였다. 16~18세기 유럽 절대주의시절에도 상류사회여성은 몸매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불면 꺼질 듯 연약하여 노동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매일 밤 사랑의 향연으로 지새고 있는 듯 창백한 얼굴이 그 시대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다. 커리어와 비주얼을 겸비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여성은 정상체중을 가진 축에 이르기까지 살 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의 연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는 시기마다, 여권향상에 위협을 느끼는 세력으로부터 여성을 단지 ‘육체적인 존재’로, 남성에 비해 ‘열등한 몸을 가진 존재’로 제한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고 한다.(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에서) 자기착취를 불사하는 체중감량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짚어 볼 만한 대목이다.

어쨌든 작심했다면 성공해야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다이어트 도전자 중 95%는 실패한다. 작가 하루키는 체중 줄이는 방법은 딱 세 가지뿐이라고 한다. 첫째 먹는 양을 줄인다. 둘째 적절한 운동을 한다. 셋째 방법이 흥미롭다. 연애를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뇌를 쓰는 일이야말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뇌의 무게는 신체의 5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뇌기관은 고도의 정신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전 에너지원의 4분의 1, 즉 우리가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의 25%를 소모한다는 것이다. 두 주장은 일맥상통한다. 사랑이란 다름 아닌 상상하는 일이니. 한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어 첫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번민으로 지새우게 되던가. 사람의 뇌가 비중을 크게 두는 순서는 눈, 손, 입술, 혀의 순이다. 드디어 만나 눈길을 주고받고, 조심스레 손을 마주잡고, 이윽고 다가서서…(이하 생략해도 되지요?) 어쩌면 그렇게 사랑을 나누는 수순과 닮았을까. 내 오랜 기억으로도 유부남과 스캔들을 내고 몰라보게 살이 빠진 고향언니가 있었는데, 역시 다이어트의 첩경은 혹독한 연애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사랑은 아무나 하나. “자기애는 평생의 로맨스”라는 명언으로 보아, 결국 다이어트에 대한 해답은 ‘지독한 자기애’인가?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