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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이 보는 세상] 에어샤워 피넛리턴
북부 산악지 몬돌끼리로 가는 길은 싱그러웠다.
여기가 사철 더운 캄보디아인가 싶게 유럽풍의 서늘한 정경이 눈을 채웠다. 대형 버스가 제법 높은 산등성이를 헉헉대며 오르면서는 강원도의 느낌을 주는 산록 전원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숨이 턱에 닿는 프놈펜의 오월과 달리 밤이 되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의 도움도 없이 숙면을 취하는 것조차 가능하였다.
프놈펜을 출발해 대략 7시간 걸려 도착하기까지 버스의 냉방 시설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머리 쪽을 향하도록 조절한 송풍구를 통해 시원한 바람이 물줄기인 양 내려온다. 덕분에 알맞은 물로 샤워를 할 때의 상쾌한 상태로 바깥 풍경을 감상한다.
세계인의 언어로 간주되는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고 주장하는 윤똑똑이들이 종종 있다. 필리핀인들이 영어를 자기 언어처럼 구사하여 얻는 이로움을 보거나 후줄근한 입성의 캄보디아인들이 우리보다 영어가 능숙한 상황을 겪게 되면 더위에 머리가 멍해져서인지 가끔은 그런 주장에 솔깃해진다. 그러나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실존철학자의 말에 근거하여 조금만 생각해보면 영어공용어론은 일고의 가치조차 아까운 속견(俗見)일 뿐이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이른 나이에 영어를 가르치면 영어를 잘 할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그런데 영어 조기교육을 어떤 원칙이나 기준 없이 하게 되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됨을 너무도 자주 목격해왔다. 아주 쉽고 속되게 예를 들어 “밀크 좀 기브해 봐.” 식으로 섞어서 썼다가는 ‘바이링구얼’이 아니라 ‘다중언어혼란증’에 빠지게 만드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그런 경험의 그루터기들에 기대어 터 잡은 나의 견해는 제 나라 언어가 먼저 확실하게 머릿속에 정립(正立)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최소한 동시(同時)이더라도 상관없지만 섣불리 섞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더욱이 갈데없는 한국인인 우리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면, 그리하여 자녀들의 밝은 미래에 심각한 혼돈과 고민의 먹구름을 안겨주지 않으려면 모국어가 자랑스레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전의 졸고(拙稿)들을 읽어온 어떤 분들은 내 생각의 모순됨을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백범(白凡)의 문화우선 소망을 존경하고 지구마을 입에 올리며 사해동포주의를 표방(標榜)해온 흐름과 배치(背馳)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 사고의 추이(推移)에 따르자면 영어공용어론이야말로 자연스런 국제화인 듯 보이기도 하겠지만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을 읽어보시면 사해동포주의의 진정한 의미가 주체성 세움 다음의 일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강자들의 사해동포주의에 대해서도 냉철(冷徹)하게 떠올려보자. ‘대동아공영’을 소리 높여 외친 일본의 행동에서 과연 ‘차별 없는 공동 번영’ 추구가 진심이었다고 믿을 수 있었던가. 세계 평화를 부르대는 미국 주도의 서방 목소리가 진정의 미성(美聲)이었다면 이슬람국가[IS]가 저토록 세를 확장하는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모순되게도 착하기만 한 존재는 존중받기보다 무시되는 게 현실이라는 박토(薄土)이다. 그 연장선을 따라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게 갖춰진 사람이 때로 깐깐한 인상을 줄망정 제대로 대우 받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미국인보다 완벽한 영어를 ‘공정 경쟁’ 푯말 붙은 아름다운 산으로 뻔찔나게 울려보아야 생긴 모습이 한국인인 한 서양인 대접의 메아리는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판소리 명창으로 알려진 분이 광고에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유행어를 남긴 일이 있다. 그것이 폐쇄적인 국수주의(國粹主義) 사고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쇄국과 배타의 경향은 아직까지도 국제적으로 강한 쪽에 속함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해석을 잘못한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 것‘만’ 좋은 것이라고 어긋나게 받아들였을 때 국수주의로 가는 것일 뿐 ‘은/는’의 보조사는 결코 ‘only’의 뜻이 아니다. ‘contrast’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채택으로 ‘한국인은 미국인과 다르다’의 용례(用例)를 보면 또렷하게 짐작 가능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놀랍게도 애국심이란 단어의 느낌을 알지 못한다고 자주 들어왔다. 국가가 내게 뭘 해주기는커녕 하나뿐인 생명마저 거두려했던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드문 잔혹한 역사의 산물이리라. 적어도 한반도의 국체들이 이만큼 국민들을 학대해 온 게 아니라면 방송인과 언론인을 선구(先驅)로 하여 그간 우리 말글을 천덕꾸러기 취급해온 행위를 반성하는 일을 대대적으로 벌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멍한 머리에 맑은 공기를 퍼부어 상쾌함을 선물한 사태(事態)를 ‘에어샤워’라고 불러보았거니와 이런 몰지각한 작명 태도를 너무도 의식없이 유포시키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른바 예능으로 불리며 텔레비전 황금시간대를 장악한 한국의 방송들을 과장없이 몇 초만 지켜보아도 이와 같은 언어의 사례가 넘치고도 넘친다. 외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국적 불명의 언어 사용이 우리의 국제화 표준인 것마냥 남용(濫用)되는 현실이 굉장히 서글프다.
샤워야 벌써 일상어 되었으니 서글픔 대상 삼는다면 버스를 고유어로 바꾸려는 노력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나 버젓한 단어 ‘공기’를 두고 ‘에어’라고 부르는 일은 결단코 자제되어야 함에도 이미 이 단어 ‘에어샤워’는 사전에 등재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회귀’보다 ‘리턴’을 편하게 느끼려는 일부의 감성에 힘입어 어느덧 ‘땅콩회항’을 자연스레 ‘피넛리턴’이라 부르게 되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 없다.
세계의 언어학 거장들이 가장 과학적인 문자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우리 한글이다. 그런 문자 더욱 드높여 인류 문화에 기여하자는 게 어찌 세계화 역행의 속 좁은 생각이 되는 겐지 궁금하다. 오늘도 전 방위로 난사(亂射)되는 ‘IV(international vocabulary) 산탄(霰彈)’에 온 가슴 뚫린 세종대왕과 최세진과 주시경 같은 분들의, 혼신(渾身) 던진 국민 사랑 상실한 헛헛한 눈동자, 거울 보며 내 눈 속에서 한번 찾아 주셨으면 좋겠다./한유일 shinin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