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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이 보는 세상] 개안
“한국인 중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캄보디아인들을 도와야 하나요?”
현 국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3일 연휴의 첫날인 5월 13일 KOICA가 지은 앙두엉안과병원 개원식이 열렸다. 프놈펜 대표 사원의 하나인 왓 프놈 근처 요지에 예쁘게 자리잡은 병원서 치러진 개원 기념식에 우리측에서는 삼부요인(三府要人)의 한 분과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캄보디아에선 훈센 총리를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동석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 베트남 포함 주재국 대사 16명이 자리를 함께 할 정도로 자못 큰 행사였다.
총리에 앞서 축사를 한 우리 정부 요인은 캄보디아가 훈센 총리의 영도력 아래 발전하고 있다고 그를 추켜세웠다. 경제성장률 7%대의 고성장을 이루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부패 정도가 매우 높은 나라가 캄보디아이고 그 중심에 총리가 있음을 대개는 짐작한다. 그러면 축사에서 부패상을 솔직하게 지적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입헌군주제가 본디 그런 편이지만 이 나라는 비슷한 제도의 다른 나라들보다도 유달리 왕실의 힘이 약하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실권이 미약할 뿐더러 국민들의 왕에 대한 존경과 신뢰도 전임 왕보다 약해 보인다. 그러한 왕의 생일에 맞춰 병원의 개원식을 하는 것 역시 마땅찮게 볼 수 있다.
더욱이 총리가 부패의 진원지라고 추정된다면 번듯한 병원 지어 주는 것 자체가 악덕의 조장(助長)이라 몰아붙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같은 핏줄의 동포들이 최악의 수준으로 기아에 시달려도 행여 포악한 지도층의 주머니 불리게 될까 외면하는 어떤 국민들 입장에서 고려한다면 말이다. 이른바 아까운 국민 세금 ‘퍼주기’가 될까 저어하는 시각(視角)에선 여기 총리도 고까울 소지가 충분하다.
허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한국의 어려운 이들을 기꺼이 돕는 사람들일까. 경험상 실제로는 돕지 않으며 그저 자기돈 미세(微細) 일부가 포함된 세금이 원조에 쓰이는 게 아까울 뿐일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다만 인색함일 뿐 타당한 논리의 전개라 하기 어렵다.
요컨대 어떻게든 작은 흠이라도 들추어 국제 원조나 봉사 자체를 원천봉쇄(源泉封鎖)하고 싶어 꺼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침소봉대(針小棒大)의 맹목(盲目) 작대질은 그러나 의외로 힘이 세다. 어쩌다 비위 거슬린 언론이 슬쩍 거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헌신적인 봉사 활동조차 하릴없이 쓸데없는 헛짓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개원식과 같은 요식 행위에서 왕을 거론하고 총리를 칭찬하는 걸 액면대로 받아들일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자. 외교적인 인사치레임은 삼척동자라도 알 일인데 거기서 일삼아 상대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는 걸 솔직하고 인간다운 행동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명색(名色)은 어떠하든 실제는 그 나라의 평범한 국민들을 돕는 일이므로 오히려 그런 무난한 처신이 지혜로움으로 간주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아 동포를 돕는 건 좋지만 퍼주기가 전쟁 준비로 연결된다고 입에 거품 물 수도 있겠다. 안과 병원을 지어 소외층 수술해 주는 건 아름답지만 나쁜 지배층의 안정화에 기여한다고 거리끼는 일 또한 가능하겠다. 그런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반 이상이 개명(開明)한 고등 종교의 교인이라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때마다 그들 성소(聖所)에 모여 대체 무슨 사랑을 어찌 구현하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텔레비전의 관련 프로그램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캄보디아에 와 있는 70명 넘나드는 한국의 봉사단들은 전국의 오지(奧地)에서 현지인 수준으로 살면서 봉사를 수행한다. 대체로 그들은 훈센 총리를 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칭송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의 관심은 인체로 치자면 실핏줄에 해당할 지역 현지인들의 행복이고 건강이다.
우주가 지구를 돌던 중세도 아니고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발전으로 세계가 한 마을임을 모두가 실감하는 현대이다. 지구촌 사람들이 하나로 엮인 생명체라는 깨달음이 종교를 불문하고 확산되고 있다. 하여 가장 낮고 가장 아픈 사람들을 돕는 일이 세계 화평(和平)의 지름길임을 우리는 알아가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대한민국은 어느 측면에선 ‘한류’의 이름으로 전 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는 중심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베푸는 게 정도(正道)라 보이며 인기나 돈만 취하려 해서는 그 지위가 오래 갈 수 없다. 절대적 선악이란 건 쉬이 가를 수도 없거니와 그것 핑계로 인색함 드러내다간 머지않아 경원(敬遠)될 수 있음에 눈 떠야 한다.
비유하자면 한류의 부상으로 반짝거리는 대한민국은 지구생명체의 눈으로 떠오른 형국이다. 사실 인간은 90퍼센트 이상의 정보를 눈을 통해 파악한다 하거니와 그러기에 몸이 백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란 속언조차 있다. 그러니 이렇게 위대한 눈에 그만큼의 에너지를 독점 공급하자 주장할 수도 있겠는데 그게 과연 타당한 판단일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정치도 외교도 꼬이기만 하는 지구촌의 현실을 보자면 어쩌면 사랑을 나누는 원조사업은 유력한 대안일 수 있다. 용을 그려놓고도 눈알을 그리지 않으면 용일 수 없고 훌륭한 불상을 모셨어도 점안(點眼)이 되지 않았다면 부처님 대접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이 진정 세계인의 눈 역할 하려 한다면 넓디넓은 가슴 세계로 향하는 사랑의 개안(開眼)을 하여야만 한다.
덧붙일 필요도 없지만 한국전쟁 직후 그 폐허에서 평화봉사단을 비롯한 원조의 손길은 대한민국이 오늘에 이르게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이제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게 되어 가슴이 벅찰지언정 고통 받는 세계인을 외면하라는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눈동자에 가시를 박는 고약함이다. 더욱이 세계 속 대한민국이 미국이나 중국 같은 용도 아니고 보통의 한국인들이 부처님 맞먹는 성현(聖賢)도 아니지 않은가./한유일 shinin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