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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좀도둑
열대 야생화, 폴리네시아 원시음악, 고갱의 화실뿐만 아니라 침실에서도 기꺼이 누드가 되어 주었던 가무잡잡한 여인들, 지상 최후의 낙원인 남태평양 타이티는 누구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섬이라고 한다. 1767년 사무엘 윌리스 선장은 최초의 영국인으로 이 ‘사랑의 섬’에 상륙했다. 오랜 항해에 지친 영국 선원들은 사랑 고픔을 해결해야 했는데, 타이티 여인들은 금이나 은보다 못(쇠)을 더 좋아했다. ‘못’과 ‘사랑’의 거래에 참여하지 않은 선원은 한 사람도 없었고 쇠못을 많이 챙겨오는 남자가 최고 대접을 받았다. 당시 <선장 일지>에 배를 결합시키고 있던 쇠가 모두 뽑혀져 배가 해체되기 일보 직전으로, 출항이 불가능하다고 적은 기록이 남아있다. 여인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못을 훔친 남자들!
도둑에도 종류가 많다. 자질구레한 것을 훔치는 좀도둑부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저지르는 생계형도둑, 기술이 특출하여 소유권 이전의 전문가로 자부하는 직업적인 도둑, 권력자의 재산을 훔쳐 가난한 민중에게 나누어 주는 의로운 도둑, 횡령 탈세 조작 부정부패 뇌물수수 등 지능적으로 지위를 이용하는 화이트칼라 도둑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대문명에서 도둑의 처벌에 대한 법률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절도(竊盜)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범죄행위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사람 사는 곳엔 어디나 좀도둑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날 벌어 그날 사는 사람 천지인 캄보디아는 더 흔하다. 그래서인지 건물마다 어마어마한 방범구조물이 설치 돼 있어 ‘철창에 갇힌 건물’을 연상케 할 정도다. 외국 업체의 좀도둑 피해가 가장 심하다. 우리나라도 가난에 찌들었던 한국전 직후 미군부대에게 그랬듯이, 이들도 이방인을 상대로 한 절도에서는 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탓인 듯하다. 내부자, 소비자, 거래처 직원…, 언제라도 다른 관계로 만날 수 있는 그들은 큰 것을 노리는 법이 없다. 주의하지 않으면 당하고도 지나치기 일쑤다. 건축현장에서는 구리전선 삼사 미터, 철근 두세 가닥, 연장이 소소하게 없어지곤 한다. 수천 명이 일하는 산업현장이야말로 손실이 상당해 커다란 골칫거리라고 한다.
좀도둑은 재화뿐만 아니라 시간과 기분마저 훔쳐간다. 표 나지 않는 물건이라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잡아내는데 오래 걸리고, 대부분 얼굴을 맞대고 의기투합하던 누군가의 소행이기 때문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도 잠깐이다. 타이티섬의 영국 선원들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도 처한 환경에 따라 도둑으로 돌변할 수 있다. 견물생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들도 처음에는 작은 못을 훔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의 주요부재를 결속하는 큰 못인 ‘징’(大頭釘)까지 태연하게 뽑아갔다. 나중에는 해먹(그물 침대)을 걸어 두는 못마저 없어서 다들 갑판 바닥에 누워 자는 지경이 되었다니.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좀도둑 개도를 소홀히 할 수 없는데, 그 노릇이 좀 좀스러워야 말이지… / 나 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