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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역사탐방] 앙코르 시대 이후의 캄보디아 4
18세기로 들어서면서 캄보디아는 동서부 양쪽의 두 이웃 강대국가에 의해 압박과 위협을 받게 되면서 내부에서부터 분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왕자들이 후원국을 찾기 시작한다. 왕족과 왕자들은 친베트남, 친태국 성향으로 나뉘어진다. 따라서 18세기에서 19세기의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의 계속되는 침략의 역사를 갖게 된다. 이 시기의 캄보디아 영토는 서부는 태국의 영향아래, 동부는 베트남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고 왕권 또한 추락하게되었다.
18세기 중반에 캄보디아 왕조는 캄보디아의 동쪽과 서쪽을 둘러싸고 있는 태국과 베트남 왕조의 영향에 따라 태국의 영향아래 놓이기도 하고, 베트남의 영향아래 놓이기도 하였다. 1772년 태국은 프놈펜을 약탈하고 파괴한 뒤 캄보디아를 태국 원정군의 지배하에 두었다. 그러나 1782년 베트남 왕조는 태국의 조정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캄보디아를 공격한다. 베트남의 공격에 위협을 느낀 캄보디아의 왕가는 태국으로 피신하였고 태국 왕조는 캄보디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앙코르와 시엠립 지역을 포함한 북서쪽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1800년대 초에서 프랑스의 진입이 있을 때까지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태국 두 국가의 간섭과 침략, 그리고 내부분열로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과 태국의 두 왕조는 캄보디아 왕정의 분열을 조장하였고 태국의 계속되는 침략을 부채질하였으며, 결국 베트남의 보호정치까지 가게되었다. 1830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의 보호정치는 계속해서 프랑스의 보호정치까지 이어졌다. 역사가들은 프랑스가 1860년대에 캄보디아에 보호정치를 실행하지 않았다면 서쪽은 태국에, 동쪽은 베트남에 내어주고 초소형 국가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본다.
태국으로 피신을 갔다가 다시 우동으로 돌아온 ‘엥’왕은 태국의 보호아래 왕정을 이끌어가며 태국 왕조에 조공을 보냈다. 왕의 귀환은 왕국을 부활시켰지만 통치를 지속하지 못하고 1797년에 사망한다. ‘엥’왕의 후계자인 ‘찬’혹은 ‘짠’ 왕자는 왕이 죽고 난 후 1806년 왕위에 오른다. 태국의 관리 아래에 있던 왕은 태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왕위에 오르자 친베트남적인 외교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 글 :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 크메르어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