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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 십계명
사회비평가 H. L. 멩켄은 “사람들은 실제로는 경찰이 필요할 때 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며 종교에 대한 현대인의 정서를 비꼬았다. 위협적인 상대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경찰이 출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나,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볼멘소리로 신을 찾는다는 의미일 테다. 한 달도 넘게 단식 중이던 세월호의 한 유가족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먼 나라에서 하느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영적인 지도자를 붙들고‘영혼의 구제’가 아닌‘세속법제의 구제’를 간구하다니, 얼마나 대한민국 공권력의 벽이 높고 미덥지 못하면 저럴까, 안타까운 심정과 함께 만감이 교차되었다.
다른 학문과 달리 신학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종교의 영향력은 위축되어 초월적인 힘을 믿거나 맹목적으로 경전(經典)에 의지하는 일은 약자의 철학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종교가 여타의 분야와 다른 차원을 추구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천 년을 뒤로 거슬러 올라간 듯 변하지 않는 교의(敎義)는 많은 이를 죄인으로 만들어 가치관의 혼란을 빚기도 한다.‘종교에서 사교(社交)를 빼면 뭐가 남겠는가.’식의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현대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위무와 인류 평화 구현이라는 종교 본연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종교적 권위와 관례를 잇따라 깨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신선하다.“‘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을 현대에 맞게 고치면‘경제적 살인을 하지마라’가 될 것”이라며 돈줄이 목숨줄로 변한 극단적인 배금주의를 요즘 코드로 바꿔 경종을 울린 일도 그렇고, 낙태, 동성혼, 피임에 대해“교회의 독단적이고 도덕적인 가르침이 항상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며 시대조류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면도 그렇다.‘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한 캄보디아청년이 성(聖)과 속(俗)의 갈림길에 선 고민을 털어놓자 교황은 어느 길을 가도 좋지만,“주님, 제 삶에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는 답변으로 무엇보다 개인의 정체성 확립을 강조한 점도.
한국사회는 쏠림이 심한 편이다.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성형수술 1위…, 극단적인 통계치가 이를 뒷받침해준다.“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문구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을 보면 성과지상주의 세태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풍조 탓도 있으리라. 이번 교황 방한을 계기로“자신의 인생을 살고 타인의 인생도 존중하라”,“타인을 개종하려 들지 마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 십계명을 한번쯤 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단언하건대 최고자리를 고수하려는 사람이나 타인을 개조하려는 사람만큼 불행한 인생도 없다. 우리 각자 쓰임새가 다르게“너답게 살라”고 만들어진 세상 유일무이한 피조물이 아니던가. / 나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