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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역사탐방] 앙코르의 발견
앙코르 왕국이 쇠퇴하면서 왕도를 포기하게 된 후 앙코르 왓은 정글 속으로 잊혀지게 되었다. 앙코르가 버려진 뒤 그 유적들은 16세기 초반부터 서양에 알려지게 된다. 1601년 포르투갈인 선교사인 리바데니라는 앙코르 왓을 로마인 또는 알렉산더 대왕이 만들었다고 전하기도 하였다. 동시대에 도미니카 수도사였던 가브리엘 안토니오가 1595~1603년 사이에 기록한 글에도 앙코르 왓이 언급되어있다. 물론 앙코르 왓의 위치에 관한 그의 기록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앙코르 왓의 사원의 특징, 왕도 주변의 바라이, 그 외에 사원 등이 묘사되어있다. 앙코르 왓에 대한 기록은 그 이후에도 여러 문헌에 나오는데 1623~36년 사이에 이 곳을 방문한 일본인인 시마노 켄로는 앙코르 왓을 인도의 불교 유적인 Jetava라고 착각하였고, 부유보 신부에 의하면 1783년 당시에 이 사원에 천 명의 승려들이 거주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앙코르 왓을 발견한 사람은 앙리 무어 Henri Mouhot 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앙코르 왓을 여행했던 사람들이 기록한 글이 발표되었었는데 주목을 끌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앙리 무어가 앙코르 왓을 돌아보고 발표한 글이 유럽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앙코르 유적을 발견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동식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앙리 무어는 1860년경 톤레삽 호수 주변을 탐사하다 앙코르 왓을 발견하게 된다. 데생과 수채화에도 능했던 앙리 무어는 앙코르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았는데 1863년 런던과 파리에서 출판되어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앙코르의 모습을 보기 원했고 앙코르 왓에 대한 최초의 사진은 1866년 존 톰슨에 의해 촬영되었다. 앙리 무어는 방콕을 거점으로 4차례 동남아를 탐사했는데 1858~1860년 사이에 캄보디아를 방문했으며 1861년에 열병으로 정글에서 사망한다.
1864년 캄보디아는 조약에 따라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는데, 이것이 프랑스가 이쪽 분야의 연구와 유적복구에 독보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하노이에 위치한 프랑스 극동연구소의 설립으로 이 과정은 더욱 빨라졌다. 새로운 비문이 발굴・번역되면서 앙코르 왕조의 순서와 역사가 조금씩 베일을 벗게 되었다. 복구 및 유지는 2차대전 중에도 계속되었고 1953년 캄보디아가 독립하면서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크메르루즈와의 내전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오늘날까지 복구는 계속되고 있다. / 글 :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 크메르어문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