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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책이 없는 나라
‘책을 읽지 않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익히 알고 있는 말이다. 인류가 문명을 일궈 오면서 지식을 전수하는 수단으로 책이 만들어졌고, 책을 읽음으로써 삶의 지혜를 얻고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를 비롯해서 문명이 발달한 곳에는 도서관이 있었고, 문명과 문화가 융성한 민족일수록 책을 숭상하는 전통을 이어 왔다.
읽을 만한 책이 없고 책을 읽는 사람이 없는 나라 캄보디아, 좀 과장이요 비약일 수도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 할 수 있는 IBC나 PBC의 서적 코너에 가 보면 정말 책이 없구나 하는 것을 금세 느끼게 된다. 진열대에 꽂혀 있는 책이 천 여 종이나 될까? 게다가 책을 한 권 한 권 들춰보면 책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삼사십 페이지의 인쇄가 조잡한 책과 복사본들이 주류를 이룬다. 교양서적이나 초중고 학습 참고서 같은 것은 극히 빈약하고, 두께가 얇은 이야기책들이 좀 있을 뿐이다. 교육 시스템이 취약하기도 하지만 학습이나 지적 활동을 돕는 책이 없다는 것도 캄보디아의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
오늘 특별한 행사에 다녀왔다. 한국의 한국아시아우호재단이 마련한 도서 기증식이었다. 몇 년 전 캄보디아를 둘러보고 캄보디아에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책이라고 느낀 한국아시아우호재단의 최재성 이사장(국회의원)이 뜻있는 기업과 개인, 그리고 KOICA와 KOTRA 등 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캄보디아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들어 그 첫 번째 결과물을 내놓는 자리였다. 행사는 프놈펜 시내의 초등학교 두 곳을 선정해서 어린이들에게 책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과 캄보디아 전래동화 5권을 한국에서 출판해서 캄보디아 전국의 초등학교에 보급할 2만 7천 여 권의 책을 들여왔다. 캄보디아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칼라 삽화를 곁들여 고급스럽게 만든 책이었다.
몇 년 전부터 이 일을 돕는 데 참여하면서 캄보디아의 교육 현장이 얼마나 취약하고 국민 교육을 시현하는 데 담당자들이 얼마나 무성의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많은 돈을 들여 책을 공짜로 만들어 주어도 이것을 전국의 초등학교에 전달할 배포망이 없다고 교육 당국자가 난색을 표해서 몇 달 전에 들어온 책이 현재 창고에 쌓여 있다. 배포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책을 배포하기 위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거나 책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의 중요성이 희박하고 책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국 저술과 출판 활동을 위축시켜 책이 없는 사회를 연장시킬 수밖에 없다.
한국에 있는 지인과 함께 캄보디아 대학생 두 명을 돕고 있는데 이들 대학생조차도 자기 돈을 내서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달랑 대학 교재 하나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고 교양을 쌓는 일을 접고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두 학생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매달 지급해 주는 장학금에서 20달러 이상은 책을 사는 데 쓰고 매달 한 번씩 읽은 책을 가지고 대화를 하자고. 무슨 책을 골라 읽든 이들이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다면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