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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앙코르와트,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12세기 초 수리아바르만 2세에 의해 건축된 앙코르와트는 세 겹의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례이야기가 부조로 장식되어 있는 세 번째 회랑 남쪽의 우측날개부분에는 ‘천국과 지옥’ 편이 새겨져 있다. 하늘에서는 압사라가 춤을 추고 노예들이 멘 가마에 앉아 유유자적, 천국은 고요하고 단조롭기 그지없다. 남을 해치거나 도둑질한 자는 납과 주석을 녹인 웅덩이에 던져지고, 남의 아내를 유혹한 남자들은 맹금류의 부리에 갈기갈기 찢겨 끈적끈적한 고름으로 채워진 늪 속으로 던져지며, 음탕한 여자들은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가 골수로 가득한 호수에 던져지는 등, 지옥은 비명에, 절규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다.
이것은 지질학자 ‘비토리오 로베다’의 저서 <앙코르와트>에 수록된 내용이다. 요즘은 전문서적이나 여행책자, 인터넷의 정보가 워낙 방대하여 자료수집이 수월하다. 하긴 19세기에도 ‘쥘 베른’ 같은 작가는 여행은커녕 매일 도서관에 파묻혀 조사한 자료에 상상력을 덧붙여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썼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풍경이라 책을 통해서도 여행을 할 수 있어, 하늘이 어디서나 파랗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 일주까지 할 필요가 없다지 않던가.
참다운 여행이란 교양을 넓히거나 자랑거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잊기 위한 것이 아닐까. 고국을 떠나오며 자리가 잡히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한지 6년, 옛 지기로부터 앙코르와트 여행길에 만나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고 죽어서 납골당 한 귀퉁이를 차지할 때나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려니 짐작은 하면서도 이 대목만 넘기면, 넘기면…, 조춤 조춤 살다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고 하고, 해보고 싶은 일을 조금 무리해서라도 시도를 하는 것 같아요.” 비슷한 연배의 지인 편지에서 어느덧 쌩쌩하게 여행 다닐 수 있는 세월이 창창하지 않은 연식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사 작파하고 길을 나섰다. 프놈펜에서 시엠립까지 240㎞, 물구덩이투성이의 국도를 7시간이 넘게 덜덜거리며 달리다보니 새삼 캄보디아 현실을 뼈아프게 깨닫기도 하고.
앙코르와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 또한 한 고독한 여행자에 의해서였다. 1861년,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동남아 밀림 속으로 숨어든 프랑스 동식물학자 앙리 무어가 우연히 저양각(底陽刻) 조각의 보고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150여년 만에 캄보디아의 한 해 관광객 수가 400만에 육박하고, 연간 관광산업수입액이 GDP의 15%에 이르렀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선조들의 업적과 나그네의 혜안 덕에 캄보디아가 관광대국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골치 아픈 세상사를 잊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가고 싶은 곳,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로서 캄보디아로 거듭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