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먹거리 문제

기사입력 : 2013년 09월 09일

먹거리

직장상사에 대한 이상형이 각자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밥 때가 닥치면 “밥 먹고 합시다!”, 씩씩하게 외쳐주는 사람이다. 당연히 가장 싫어하는 유형은 점심때나 퇴근 할 즈음에 이르러 “그런데 말이지…”, 마무리 지으려는 일에 토를 달고 나오는 사람이다. 나같이 비축된 체내지방이 적은 축들은 한 끼만 착오가 생겨도 뇌의 에너지 공급에 적신호가 켜진다. 이성이 마비되면서 짜증이 솟구치고 아무리 매력적인 선배라도 반발심이 드는 것이다. G20 회의장의 정상들이건, 다리 밑의 비렁뱅이건 궁극의 목적은 ‘다 먹자고 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음식을 기다리던 기억만큼 오래된 것이 있을까. 유년기 끼니를 기다리다 지칠 때쯤, 들일을 마치고 오시는 길에 대문 어귀 텃밭에 들러 푸성귀를 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장이라도 밭으로 도망갈 것 같이 숨이 덜 죽은 겉절이와 근동의 갯벌에서 잡은 방게장에 새로 빻아 구수한 잡곡밥으로 꾸린 밥상, 내 생애에 다시 마주할 수 있으려나. 남긴 음식들은 알뜰히 모아 쌀겨나 밀겨를 풀어 종일 꿀꿀대는 돼지우리에 부어주곤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네 입으로 들어오는 먹거리의 출처는 너무나 분명했다. 현대인은 슈퍼마켓에 장난감처럼 진열된 식료품을 쇼핑해 식탁에 올린다. 화학물질 대량살포, 유전자 조작, 장거리 수송 등 이윤극대화전략 속에 생산되는 성분을 알 수 없는 것들.

인류의 식량 확보 역사는 유구하다. 정착생활과 더불어 야생 동식물을 가축화하고 작물화 했다. 그중에서도 돼지는 단연 최고의 동물성 영양원이다. 수많은 야생동물 후보를 물리치고(?) 돼지가 가축으로 채택된 주요 요인은 효율적인 “식성”과 “성장속도”에 있다. 사람보다 더 많은 고기를 먹어치우는 사자,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이나 초식동물이지만 자라는데 십 수 년씩 걸리는 고릴라나 코끼리의 경우와 달리, 아무거나 먹고도 빨리 자라는 돼지야말로 사육용 동물로 적격이었다. 효율적인 식량 수급에 대한 궁리가 그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요즘은 탐욕이 지나쳐 성장호르몬, 식욕촉진제, 항생제, 각종 농약 남용을 일삼는 경쟁적인 저가속성양식으로 인체는 물론 생태계와 토질 및 수질 환경에 심각한 폐단을 낳고 있다. 영국정치가 벨포어는 “인간의 두뇌는 돼지의 코처럼 음식을 찾는 기관일 뿐이다.”는 한 마디로 인간본성의 의표를 찔렀지만, 식품의 안전한 생산과 고른 분배에 대한 문제는 우리의 영원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바야흐로 캄보디아 양돈농가도 산업화되는 추세다. 자연사료 수급에 힘쓰고 있다지만 사료 값이 비싸 성장호르몬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는 소식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 또한 인간본성을 압축하는 데 손색이 없다. 굶어죽게 생긴 판국에 선악이 무슨 상관이랴. 가난한 농가의 손에 맡겨진 먹거리 문제, 제도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때가 된 듯하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