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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칼럼]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
공안통치시대를 연상케 하는 일이 터졌다. 현직 국회의원이 ‘주범’으로 등장한 내란음모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사건이다. 죄명에서부터 지하 조사실과 고문과 비명이 연상된다. 신문들은 1980년 5월 김대중사건 이래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이라 규정한다. 형법상 최고범죄인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경악의 대상이다. 종북파로 지탄 받아온 진보 정치인과 그 당의 간부 등 14명이 연루된 일이라고 해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도 있고, 모기 보고 칼 뽑은(見蚊拔劍) 격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공소장이나 수사결과가 발표되지 않아 실체적 진실이 궁금하지만,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탈취할 내란을 모의한 것이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혐의가 국가 기간시설 파괴와 인명살상 모의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적시되지 않았지만, 지하혁명조직으로 볼 수 있는 ‘RO(Revolution Organization) 산악회’가 중심이 되어 유사시 전화국 유류시설 경찰관서 등 국가 기간시설을 공격하며, 총기를 준비하려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원내에 복수 의석을 가졌고 대통령 후보까지 냈던 공당의 일이라 더욱 거부감이 크다. 형법상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斬截)하거나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폭동한 죄’이다. 정권탈취 목적으로 일으키는 반란행위를 이름이다. 그 수괴를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양형규정이 보여주듯, 형법상 가장 무거운 죄다. 그러므로 그 행위를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 없이는 공소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과연 국가체제 전복모의를 입증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신경이 쓰인다. 국정원은 3년 동안의 내사를 통해 사건 관련자들의 대화내용 녹취록을 근거로 제시한다지만, 그것으로는 미진한 것 같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무모한 발상과 수단이 설명되지 않으면, 제정신 가진 사람들의 일로 볼 수 없다는 게 상식 아닌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흘러나온 혐의는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회의시설에 13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경찰서 지구대, 무기저장소 등 국가 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했다’는 정도다. 그것이 국가체제에 어떤 위협이 될지, 민주화 세상에 왜 그런 일을 꾀하게 되었는지, 어느 쪽으로 보아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1980년 5월 신군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김대중 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민중을 선동해 일으킨 봉기’로 조작,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 등 24명이 고난을 당했다. 사형선고를 받고 2년여 옥살이 끝에 풀려난 김대중 등 피해자들은 1995년 민주화운동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재심을 청구하여 무죄판결과 명예회복을 성취하였다.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 소식에 자꾸 지난 일들이 떠오르는 것은 경험칙 때문일까. / 문창재 내일신문 논설고문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