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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손(孫)
예나 지금이나 나의 건망증은 못 말릴 수준이다. 전화기를 잃어버리고 옷장 구석 핸드백 속에서 찾아내는 건 다반사고 종종 찬거리에 쓸려 냉장고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사전을 통째 암기해도 시원찮을 학창시절에도 매한가지였다. 친구들 연락처는 물론이고 오래된 우리 집 전화번호까지 깜박하기 일쑤여서 신상정보를 깨알같이 수첩에 기록해 신주단지 모시듯 지니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나도 나름 수첩공주다) 세월 덕분에 요즘은 기를 펴고 살게 되었다. “마누라가 예뻐 보이면 치매 초기라며? 우리 집 양반이 그래.” 동년배들 증세와 대충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50대는 머리가 좋든 나쁘든 지력의 평준화” 라더니.
정신이 가물가물한 나이가 되어도 여자들에게 해산에 대한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아무리 교양 있는 여자라도 아이 낳던 얘기만 나오면 침착성을 잃고 자기 사연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옆 사람의 눈총을 받고서야 자제심이 발동된다.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과정이야말로 어떤 예술가의 창조행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적이고 경이로운 체험인 것이다. 페미니스트 여자라도 아들을 낳음으로서 남성 입장에 서 보게 되고, 마초남이라도 딸을 낳음으로서 여성의 세계에 편입 되는 등, 부모로서 재탄생을 경험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자식 없는 사람을 ‘정서적 미숙’아닌가 의심했던 이유이리라. 대단한 사람이라도 자손에 대한 본성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한 시니컬한 명사는 막 태어난 손자를 보고, “지구상에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는 바보 하나가 늘었군.” 했다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18권의 <철학종합체계> 대작을 쓴 허버트 스펜서는 노년에 이르러 손자가 있었다면 기꺼이 책과 손자를 바꾸리라 탄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흰머리 느는 게 유일한 이력인 평범한 주부지만 청동기둥 같은 내 아들의 다리를 보노라면 훌륭한 업적을 이룬 독신여걸도 별반 부럽지 않다.
영국 윌리엄 왕자가 득남했다는 소식이다. 미국 대통령과 일본 수상을 비롯해 우리 박근혜 대통령까지 영국왕실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등 세상이 떠들썩하다. 살생이 난무하는 소요사태나 실업문제, 환경오염 등 다뤄야할 이슈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한가하게 가십타령인가 싶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날아든 왕자탄생이라는 동화 같은 얘기에 잠시나마 마음이 푸근해진다. 한편에서는 “로열 베이비 따라 키우기”, 육아소비 동화효과로 경기부흥이 기대된다고 호들갑이다. 완벽한 부모(그런 존재가 있을 턱이 없지만) 되기에 대한 부담으로 출산을 단념하는 남녀 사이에 “아이 낳기 따라 하기” 붐도 일었으면 좋겠다. 왕후장상이라도 잊혀지게 마련이고 자손을 통해 그 살점과 정신을 이어갈 뿐이다. 살아있었다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안아봤을 다이애나 비에 대한 기억 또한 잊혀지고 있지 않은가. 중국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가 우리를 낳았고 또 우리도 누군가를 낳는다. 그것 말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