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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꽃보다 술
두껍게 드리워져 있던 해무리가 이내 먹구름이 되어 내려앉아 사위가 어둑어둑해진다. 멀리 보이던 프놈펜 타워가 성큼 다가선 듯 보이고 날짐승의 울음소리가 지척에서 들린다. 비설거지 걱정에 종종걸음 치다 뒤돌아보는 여인의 표정에 근심이 배인 것이 곧 소나기가 쏟아질 모양이다. 을씨년스런 비의 전조에 빗장을 질러놓은 정한(情恨)이 풀리는 듯 괜스레 마음이 심란스럽다.
술이 거나해지면 동료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나 진을 빼던 일을 마감하는 날, 외상값 정산하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월급날 같이 음주지수(?)가 높은 날이면 야밤 기습을 당하곤 했다.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 첫날에는 꽃다발을 안기며 제법 격식을 차렸는데 “꽃보다 술을 좋아하는 여인”이라는 남편의 일갈에 후로는 꽃다발대신 술다발을 꿰차고 왔다. 술은 닳고 닳은 일상을 살짝 설레는 무드로 띄워 호시절의 추억에 젖게도 하고, 물신에 치여 자취를 감춘 형이상학의 담론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술안주로 올라온 거물급 인사를 두고 벌인 설전 또한 얼마나 치열했던가. 남자들의 술자리는 깔때기법칙에 의해 연애 무용담으로 귀납되기 마련이지만, 누군가 “마누라”라는 여인을 들먹이면 너나없이 숙연해져서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갑자기 술이 깬다는 분도 계셨지만.) “일자리 좀 알아봐줘, 이젠 신물이 나.” 중요한 용건은 맨 마지막 헤어질 때에야 삐죽 들이밀기 일쑤다. “술은 인생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다.”는 호머 심슨의 말처럼, 술이란 악덕 안에 미덕을 미덕 안에 악덕을 지닌 모순의 음료임에 틀림없다.
경기 불황 여파로 우리나라 가계소비항목 전반에 걸쳐 지출이 준데 반해 주류 지출만 늘었다고 한다. 경제상황에 따라 마시는 술의 종류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술 소비량은 경기가 나빠질 때 증가한다고도 하고 경기가 좋아질 때 증가한다는 등 학자마다 주장이 엇갈린다. 꾸준한 경제 성장세에 있는 캄보디아 술 소비량이 증가하는 추세와 비교해 보아도 그렇다. 어쨌든 술에는 십악십선(十惡十善)의 맛이 고루 응축되어있다고 하듯이, 부와 빈, 선과 악의 피안에 사는 주당들이 건재하게 버티는 한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할 터이다.
술고래 나라 핀란드에 “핀란드에서 말을 붙이는 사람은 취한 사람뿐이다”는 속담이 있다. 어느 민족에게나 술은 체면과 수줍음을 없애는 묘약임에 분명하지만 나날이 강퍅해지는 세상에 마음의 문을 걸어 닫게 되는 세태를 풍자한 듯하다. 비가 오면 모든 물상이 선명해진다. 견고한 처세의 갑옷에 갇혔던 슬픔도 선명하게 번져온다. 우리 모두 어머니 자궁의 양수에서 비롯된 생명체인 까닭에 축축하게 비가 오는 날이면 생(生)의 근원적인 감상에 젖게 된다는 이론이 맞는 것일까. 비오는 날엔 꽃보다 술인데, 어쩌자고 우기는 깊어지는지…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