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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귀애(貴愛)와 추행(醜行)사이
시장에 나갔다가 마침 때깔 좋은 고추가 있기에 고추장아찌를 담갔다. 유리그릇 두 개 가득 재워 냉장고에 들여놓으니 마음이 뿌듯하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곰삭아지는 발효음식처럼 사람도 세월과 함께 홀로 깊어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옛날 시모께서 고추장아찌는 나눠먹는 게 아니라며 농을 치시던 생각이 난다. (맞다, 다른 장아찌라면 몰라도…) 그 시절 마실 오신 할머니들이 손자를 귀애하여 “요놈, 고추 어딨니?”, 툭하면 바지춤을 급습하곤 하셨다. 코흘리개 아들 녀석이 “냉장고에”라고 응수해 박장대소했던 적도 있다. 대부분 돌아가셨지만 요즘 같았으면 미성년자 성추행쯤 되는 중범죄에 해당될 터이다.
남남 여여 노소, 사랑의 조합이 워낙 다양해져 범법의 경계가 어딘지 조심스런 세상이 되었지만, 세도가의 섹스스캔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사원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건으로 탄핵위기까지 갔었다. <르윈스키 보고서>전문이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라오자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포르노 소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구촌 네티즌들로 인해 순식간에 접속불능이 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 전 대통령 사르코지와 부르니는 첫눈에 서로 자석처럼 끌렸다고 한다. 자신이 먼저 유혹하지 않은 남자에게는 별 흥미를 못 느낀다고 공언하던 부르니가 사르코지를 유혹하는데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사르코지는 대통령 취임 직후 부인과 이혼하고 부르니와 전격 결혼했다. 캄보디아 고위층 사모님이 백주 대낮에 남편의 애첩에게 염산을 투척한 사건도 심심찮게 회자된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거머쥔 남자의 주변에는 유혹자들로 넘쳐났다. 성적 매력을 가진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정치권력을 가진 남성뿐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권력층 성 스캔들에서 드물게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음해를 위한 정적이나 질투에 눈 먼 부인의 폭로에 의한 것이 아니면 묻히는 경우가 많다. 권력이 달리 권력이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윤창중 전 대변인이 벌인 대사관 인턴여사원 성추행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국가중대사의 핵심위치에 있는 정치인으로서,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도덕성을 저버렸다는 점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상대가 정도를 밟아온 반듯한 사회초년생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부득불 ‘돈 주앙’놀이를 하고 싶었다면 유혹자가 원하는 것만 얻으면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사람인가 정도는 한눈에 알아 모셔야하지 않았을까. 영원한 사랑으로 가득한 동화 같은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만, 우리 같은 여염집 여자라도 배우자가 우발적인 사랑 따위를 들키는 일일랑 없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무지, 권력, 교만은 가장 치명적인 배합이다.”는 아랍속담은 윤창중을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싸나이 벨트 아래의 일은 따지는 게 아니다”던 유신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세상 많이 좋아진 건가?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