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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120화 뽀삿주 “네악따 클레앙 므엉 전설”
뽀삿주에서 전래되는 “네악따 클레앙 므엉 전설”의 클레앙 므엉은 16세기에 시암(현 태국) 군대에 맞서 유령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다. 캄보디아 군인들은 그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으로 사후 세계에서도 계속해서 나라를 지킨다고 여긴다. 관련 역사적 기록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인 1904년과 1906년의 캄보디아 왕실 연대기가 최초이다. 해당 연대기는 당시의 통치자 씨소왓 왕(통치: 1904-1927)이 태국에서 돌아와서 형의 왕좌를 계승한 데 대한 정당성 확보를 목적으로 구전하는 이야기를 역사에 접목했다.
‘클레앙’은 크메르어로 ‘금고’ 또는 ‘창고’라는 뜻이며 ‘므엉’은 태국어로 ‘지방’이라는 뜻이다. 즉, 전설의 제목은 ‘지방의 수호자’로 해석할 수 있다. 또는 13세기 자야바르만 7세가 통치하던 크메르 제국의 압제를 벗어나 태국 최초의 수쿠타이 왕국(1238-1438)을 개국한 공신 ‘파 무엉 장군’의 이야기를 도입한 것으로도 본다. 캄보디아 암흑시대(1431-1863)와 프랑스 식민지(1863-1953)에 왕족과 귀족은 태국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아서이다. 반면에 뽀삿주에서 구전하는 이야기는 시암 군대의 공격을 막아내려는 염원을 중점적으로 담는다.
“네악따 클레앙 므엉 전설”은 친태국파 ‘껀 왕(1512-1525)’의 실각과 반대파 ‘짠 1세 왕(1516-1566)’이 왕좌를 찬탈한 역사를 반영한다. 1504년 크메르 왕국은 ‘스레이 수꼰토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평범했던 ‘껀’은 여동생을 왕의 후궁으로 들이고 왕실에 입문해서 왕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스레이 수꼰토 왕은 꿈을 통해서 껀이 왕이 되리라는 계시를 접하고는 그를 제거하려했다. 여동생은 이 사실을 오빠에게 누설했고 껀은 왕궁을 탈출하고 반역을 도모해서 왕을 죽였다. 1512년 왕위를 성공적으로 탈취한 껀 왕은 영토를 확장하고 민심을 돌보는 통치를 통해서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가 했다.
▲클레앙 므엉 장군의 사당
한편 스레이 수꼰토 왕의 치세 동안 동생 ‘짠 왕자’는 ‘클레앙 므엉 장군’의 도움으로 시암 왕국으로 도주해서 은신했다. 코끼리를 잘 다룰 줄 알았던 그는 시암 왕의 눈에 들어서 왕궁에서 코끼리를 관리하며 측근을 형성하고 귀환의 기회를 노렸다. 이때 크메르 왕국의 껀 왕은 서쪽 하늘에 떠오른 달이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는 꿈을 꾼다. 짠 왕자는 월식일에 태어났고 그의 이름자에서 ‘짠’은 ‘달’을 뜻했다. 실제로 스레이 수꼰토 왕의 사망이후 그는 망명살이를 접고 모후와 함께 고국으로 귀환을 도모했다.
짠 왕자는 시암 왕에게 거대한 흰 코끼리를 사냥하겠다는 구실로 병사 5천 명과 코끼리 100마리, 충분한 식량과 무기를 확보해서 캄보디아 땅으로 진군했다. 그러나 그러한 코끼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뒤늦게 짠 왕자의 야심을 알아챈 시암 왕은 군대를 동원해서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짠 왕자의 원정대는 진정한 왕의 귀환을 알리며 지나는 지방마다 동원한 인원으로 군대의 규모는 갈수록 커졌고 드디어 뽀삿 지방까지 행군했다. 한편 악의에 찬 시암 군대의 매서운 추격에 짠 왕자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클레앙 므엉 장군이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는데, 그것은 바로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독이 묻은 창을 꽂아서 채운 후 자신의 몸을 그 위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에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세 번 들리면 자신이 지옥에서 악령들을 모아 군대를 이끌고 시암 군대를 섬멸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는 단번에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졌는데 이때 그의 아내와 자식들도 함께 투신했다고 한다. 그렇게 출현한 클레앙 므엉 장군의 유령 군대는 시암 군인들에게 정신착란, 설사와 구토 등의 이상증상과 사망을 유발해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퇴각하게 만들었다.
이후로 짠 왕자는 반띠민쩨이와 뽀삿에 거점을 두고 1525년에 껀 왕의 치세를 전복해서 이전에 형님이 통치했던 왕좌를 회복하고 짠 1세 왕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캄보디아를 위한 클레앙 므엉 장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자 위령제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오늘날도 뽀삿주에 마련된 클레앙 므엉 장군의 사당에서는 전통적으로 ‘본 라응 네악따 클레앙 므엉’이라는 제사를 올린다. 특히 매년 4월 또는 5월에 찾아오는 비싹 보찌어(Visak Bochea Day)에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경의를 표하고 기도를 드리며 행복을 기원한다.
글 이영심
前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